2015년, 재난위험시설 E등급으로 분류되었던 우리나라 최초 시민아파트, 서대문구 금화시민아파트가 철거되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서울 최고령 아파트 단지이자 마찬가지로 재난위험시설 E등급으로 분류되었던 정릉 스카이아파트가 철거되었다. 이 두 아파트는 모두 1969년 지어졌는데, 두 아파트가 지어졌던 박정희 정권 때에는 정부 주도로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던 때였다. 그리고 그 아파트들은 반백년의 기간 조차도 버티지 못한 채 점점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있다. 건축물 내구성의 정도는 건축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곤 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박정희 시대의 미래 인식이 얼마나 일시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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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 또 하나의 아파트의 재건축이 결정되었는데, 바로 1974년 지어진 신림의 강남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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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동의 신림 강남아파트를 2회 방문하여 아파트의 면면들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2001년부터 재난위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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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강남아파트의 재건축 계획 수립은 작년 12월 이루어졌다. 2001년 재난위험시설 D등급으로 지정된지 14년 만이다. 즉 재건축 이야기가 14년간 꾸준히 나왔다는 이야기다. 


아파트는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 겉잡을 수 없이 낡아간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아파트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고, 꾸준히 관리하여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기 때문이다. 


재건축 이야기가 나온지 14년이나 된 아파트답게, 아파트는 상당히 낡고 위험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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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가림막은 아파트 외벽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설치해놓은 것이다. 세월의 풍파로 아파트 외벽에는 균열이 생겼고, 종종 외벽의 일부가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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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하단부의 외벽이 떨어져 그 안의 벽돌들이 다 보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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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이 심하게 손상된 곳들에는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안전제일 펜스가 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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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로 된 모든 부분들은 모두 녹슬어 그 세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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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 윗부분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세월로 생긴 틈새에 잡초 씨앗이 날아들었을 것이고, 자란 잡초는 그 틈새를 더 벌렸을 것이다.



더스트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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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파트들에는 없지만 오래된 아파트들에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의 더스트슈트이다.


더스트슈트는 집 안, 혹은 복도에서 손쉽게 쓰레기 등의 오물을 버릴 수 있는 통로로, 아파트 각 층의 집 안 혹은 복도에 쓰레기를 버리면 맨 아래층에 쓰레기가 쌓이도록 설계된 것이다. 1971년부터는 각 아파트에서 자율적으로 설치하도록 두었다가 <공영주택건설기준령(1971.2.19)> 제 7조 ‘아파트의 경우는 욕실을 전용으로 두고, 다스트슛트를 전용 또는 공용으로 설치하여야 한다’는 규정으로 더스트슈트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악취가 심하게 들어온다는 저층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1992년 설치 불가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아파트에서는 더스트슈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신림 강남 아파트는 1974년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더스트슈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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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슈트는 내부가 뻥 뚫린 구조이기 때문에 더 약하다. 많은 더스트슈트 통로 부분의 외벽이 무너져내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나무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다. 아파트들과 함께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도 재건축과 함께 사라지게 될 터인데, 이것 또한 참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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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는 집기들이 산더미처럼 버려진 곳이 다수 있었다. 그 안에서 버티고 있는 거목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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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의 세월동안 나무는 6층 아파트 높이만큼 자랐다.



삶의 흔적


강남아파트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 오정애 총무의 도움을 받아 빈 집을 들어가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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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는 16평. 화장실과 방 두 개가 딸린 집이었다. 신림 강남아파트 재건축 조합 총무에 따르면, 집에 사람이 산 지는 10년이 넘었고, 한 가족이 살았던 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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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 편에는 인형 뽑기로 뽑은 듯한 인형들이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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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 편에는 티비를 놓았을 것 같은 협탁도 있었다. 협탁 앞에는 탄 종이들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 들어와서 남긴 흔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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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주방이 있었던 곳이지만, 그 흔적을 찾기는 참 어려웠다. 오정애씨의 설명에 따르면 빈 집에 노숙인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잦은데, 노숙인들이 돈이 될 만한 가재도구를 뜯어다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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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창살은 뜯어지고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창살의 무늬가 고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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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어린 아이가 살았던 것 같았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한자 포스터, 그리고 아이 글씨체의 낙서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장성한 어른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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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초등학교 명찰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마 이 집에 살았던 아이의 물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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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밥 짓는 법을 배울 때가 생각나 웃음 짓게 하는 쪽지였다. 구석구석 보이는 쪽지와 낙서들이 이 집에 정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였다.





사실 신림 강남아파트의 첫 인상은 너무나 낙후되고 위험천만해 보여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집을 보고 나서 그제서야 이 아파트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남아있고, 지금도 사람들의 추억이 쌓이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집을 보기 전과 본 후의 느낌은 많이 달랐고, 신림 강남아파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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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처분인가는 2018년 8월로 예정되어 있고, 철거는 그 이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라지기 전 강남아파트의 깊숙한 곳까지 보게 된 것을 고마워하며 촬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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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ude

2017.02.17 10:19:52

역사의 한 페이지, 공감합니다.

장재윤

2017.02.22 23:27:48

구로디지털단지역 옆에 있는 아파트군요!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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