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히고 규정하고 색칠하라

사진마을 2017. 02. 16
조회수 3043 추천수 1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다>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 따로 글 따로는 곤란> 

 


 백제예술대학교의 학생 중에서도 앞서 살펴봤던 남보현의 <홍대>, 박승범의 <서울역>, 박지환의 <경기도 평택시 미군기지촌>이 모두 특정한 공간이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백제예술대학교의 남은 두 학생도 각각 탑골공원과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테마로 잡았다. 공간을 많이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공간을 사진으로 옮길 때는 뭘 유념해야 하는 것일까?
 대단히 넓게 보면 지구가 공간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극 등 대륙도 테마다. 조금 좁히면 한 국가가 테마가 될 수 있다.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이 가장 좋은 예다. 각각의 도시들도 모두 공간의 테마가 될 수 있다. 서울, 파리, 도쿄 등 크거나 유명한 도시뿐만 아니라 <소양호 속 품걸리>, <교토 40번지>등 도시의 일부이거나 작은 마을도 공간의 테마가 될 수 있다. 또한 행정구역상 지명이 아닌 공간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차이나타운>을 들 수 있다.
 
  지금 뭘 말하는지 짐작한 사람이 있겠다. 첫째 공간의 크기다. 둘째 공간의 규정이다. 셋째 공간의 특색이다.
 지구를 테마로 한다거나 아프리카를 테마로 하기엔 너무 크다. 크고 넓으면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좁힐수록 좋은 것이 당연하다. 요즘 쓰는 표현에 따르면 ‘기승전논문작성법’이다. 논문을 쓸 때 테마는 좁힐수록 전문성을 가져서 좋다. ‘20대 유권자들의 표심’보다는 20대 여성 유권자의 표심이 더 좋다. 또 이보다는 ‘20대 여성 사무직 노동자의 표심’이, 그보다는 ‘20대 부산 거주 사무직 노동자의 표심’이, 또 그보다는 더 좁히고 특징지을 수 있다면 더 좋다. 사진의 테마도 이러하다. 공간의 규정이란 것은 그 공간에 대한 사진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김기찬이 보는 골목과 최민식이 보는 골목이 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특색도 사진가의 규정에서 나온다.

bj01.jpg bj02.jpg bj03.jpg bj04.jpg bj05.jpg » 최형호, 탑골공원  
  최형호의 <탑골공원>은 노인과 노숙자를 담았으며 이들을 위한 정책개발을 ‘작가노트’를 통해 촉구한다고 했다. 장소도 좁고 관점도 나왔다. 그런데 사진에서 그게 보이는가? 도대체 사진에서 어떻게 무슨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공간의 특색이 필요한 것이다. 탑골공원에서 노인과 노숙자만 찍는다고 사진의 메시지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최형호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1번 사진에선 파나마모자에 멋쟁이 구두를 신고 줄이 제대로 선 콤비를 입은 신사가 주인공이고 그 옆에 꽃이 화사하게 장식되어 있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품위를 지키고 있는 노인을 보여줘서 좋았다. 2번 사진에서 벌써 흔들리고 있다. 옷차림이 바뀌었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손수건을 꺼냈고 화단에 꽃이 있으나 하필이면 화장실 앞이다. 탑골공원에서 5장을 찍는데 굳이 저 장소를 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번 사진이 하는 말과 2번 사진이 하는 말이 서로 다르다. 3번 사진에선 노숙자가 등장하는데 종이든 신문이든 뭔가를 들고 있고 곁에 막걸리로 보이는 일용할 양식이 있다. 꽃은 없으나 그늘과 빛의 교차가 꽃을 대신한다. 신분과 상관없이 아직 자존감을 버리지 않았다는 묘사다. 좋다. 4번 사진에서 모든 것이 실종되고 없다. 품위도 자존도 없이 그냥 평범한 탑골공원의 단면이다. 한 스무 장 정도 되는 포토에세이 ‘탑골공원’이라고 가정하고 또 이 스무 장짜리 포토에세이 ‘탑골공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탑골공원의 다양한 인간군상”이라면 4번 같은 사진이 하나 들어가도 좋겠지만 여기 최형호의 <탑골공원>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5번 사진에선 가로등의 문양이 꽃을 대신한다는 것은 알겠으나 찍힌 인물들이 초라해 보인다. 최형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탑골공원이 노인과 노숙자의 공간으로 변했는데 이들이 쇠락하고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국가는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1번 같은 사진들로 이어갔어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하고 싶었다면 5번 같은 사진으로 말해야 했다. 어중간하게 섞여버렸다.

 

 

bj06.jpg bj07.jpg bj08.jpg bj09.jpg bj10.jpg » 홍진웅, 이태원
 홍진웅의 <이태원>도 특정공간이다. 이태원은 지명이기도 하고 문화적 공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과거 미군기지를 상대하던 상권으로 시작해 88올림픽 무렵 여러 나라에서 방문할 수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상업 지역으로 확장되었다가 이젠 내국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홍진웅은 미군기지가 이전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또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공간 묘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달라질 미래의 공간에 대한 한 마디도 사진을 통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신선하지만 어려운 시도다. 1번 사진은 그냥 이태원스럽게 시작했다. 외국인 모델의 광고판 앞에 영어가 있고 외국인이 지나갔다. 2번은 한국사람과 외국사람이 같이 지나갔고 옆에 개(인형인지 진짜 개인지 알 수 없다)들이 포진했다. 어? 여기까지는 좋군! 3번에서 공원 같은 느낌이 나는 공간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태원의 정체성에 대한 접근이라고 봤고 역시 나쁘지 않았다. 4번에선 이태원 역 출입구에서 나오는 무슬림들을 보여준다. “다양한 외국인들이 있다” 마지막 사진에선 사자석상이 의문의 한 수다. 저리 크게 찍었으면 ‘사자를 봐라’라고 하는 뜻인데 뭘까? 모르겠다. 이것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이라면…….
 

 

 

gnh1.jpg gnh2.jpg gnh3.jpg gnh4.jpg gnh5.jpg » 권녹환, <Smoking Area>
 이상으로 백제예술대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끝내고 중부대학교로 넘어간다. 역시 가나다순으로 권녹환의 <Smoking Area>부터 시작한다. 주로 석유화학공단으로 보이는 공단 지대에서 내뿜는 연기를 밤 중에 장노출로 찍은 사진들이다. 이 중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굳이 그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진들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연기들이 많고 일상에서 연기나 수증기를 피할 수 없으므로 이 사진들이 특정한 지명이나 특색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찌 보면 다섯 장이 모두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1번부터 각 사진에는 하늘, 구름, 강, 녹슨 쇠기둥, 선박이 끼어들었음을 볼 수 있고 이게 이야길 형성하는 장치로 읽어달라는 뜻을 알겠다. 권녹환 <Smoking Area>의 가장 큰 특징은 저널리즘 전공인데도 미적인 감각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데 있다. 또박또박 하나씩 끊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장노출 때문에 파랗게 된 하늘에 마치 독가스를 내뿜은 것 같은 이 분위기는 다분히 SF영화에서 나올법한 두려운 장면이다.

 

 

kmg1.jpg kmg2.jpg kmg3.jpg kmg4.jpg kmg5.jpg » 김민경, 유희하는 인간
 김민경의 <유희하는 인간>은 매혹적인 소재를 선택한 작업이었다. 더 깊은 설명이 없어 이 사진들이 핼러윈 축제인지 다른 가면 무도회인진 알 수 없다. 더 많은 사진을 본다면 더 확실하겠지만 지금의 다섯 장은 가면 혹은 분장이 주는 의미에 대한 서사다. 강력한 1번에 이어 5번의 마무리에선 가면도 없고 코스프레도 없는 일반인의 얼굴이 등장했는데 이 또한 하나의 분장으로 보인다. 이게 바로 김민경이 말하고 싶었던 결론이자 본질이다. 시선을 끄는 앞의 사진들은 결론을 위한 징검다리였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가면을 쓰고 있다. 현대인은 가면 없이 살 수 없다. 가면을 쓰지 않은 맨 얼굴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가면이란 낱말을 분장, 화장으로 대신해도 되겠다. 관광객이 누구이며 누가 누굴 관광하는지 모르게 된 것이 현대사회다. 관광객이 분장을 하고 다니며 스스로 관광객의 볼거리로 변신한다. 신선했다.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kay01.jpg kay02.jpg kay03.jpg kay04.jpg kay05.jpg kay06.jpg kay07.jpg kay08.jpg kay09.jpg » 김아영, 초안산 내시묘역  
 김아영의 <초안산 내시묘역>은 흥미로운 작업으로 기성 사진가들과 당당히 비교해도 좋을 정도다.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 있다. 그게 뭐냐하면 이런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학생인 것을 고려하면 대단하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진이 좋으면 좋은 것이지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혹은 비전문가가, 혹은 이제 사진을 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사진이 좋아서” 기특하다는 뜻인가?
 어쨌든 김아영의 <초안산 내시묘역>은 엄청나게 기교를 동원했고 변화를 시도했고 기성 작가들의 묘비나 석상 사진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사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표현했다. 다음 작업을 하거나 있다면 어떻게 진전이 될까?
 
 기승전논문작성법에서 ‘테마를 좁힐 것’과 더불어 강조하는 것은 ‘본인이 잘 아는 것’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반가운 사진전 소식 두 가지

  • 사진마을
  • | 2017.03.02

한영수선생, 뉴욕 국제사진센터로 진출 하트 사진가 유병완, 광주광역시 사진전 사진전 두 개를 소개한다. 둘 다 사진마을에 소개한 적이 있고 둘 ...

취재

사진에 이야기를 담는 방법

  • 사진마을
  • | 2017.02.28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끝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사진전공학생 개...

취재

세부묘사와 상징을 통한 재해석

  • 사진마을
  • | 2017.02.2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5 개별 사진 분석-1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2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3 바로가기 개별 사진 분석-4 바로가기 ...

사진책

27년 풍경 속 사람들, 사진 속에 숨은 뜻

  • 사진마을
  • | 2017.02.22

 알레고리로 본 안성용의 <포항 송도> 맞은편 포철 공장·굴뚝 배경으로 조용했던 마을의 변화 ‘왁자지껄’    누군 지폐 문양 팬티 입고 놀고...

취재

사라지는 것, 등장하는 것

  • 사진마을
  • | 2017.02.17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4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좁히고 분석하고 색칠하라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

취재

좁히고 규정하고 색칠하라

  • 사진마을
  • | 2017.02.16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3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다>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 따로 글 ...

전시회

인간과 자연의 반짝 반짝 조우

  • 사진마을
  • | 2017.02.15

미국 스미스소니언사진전 해외 첫 나들이 경이로운 자연, 일상에서 발견한 순간들 벽, 바닥, 통로 공간에 사진 주렁주렁 배치 ‘스미스소니언사진전...

취재

카더라... 진짜...? 아님 말고

  • 사진마을
  • | 2017.02.13

사회관계망 통해 근거없는 '카더라'확산 "수근수근" 성폭력 가해자로 강제 '변신' 당사자 해명 요구에 "실명 올린 적 없으니" 지난해 10월 26일...

취재

살아있는 유형학을 주문한다 [2]

  • 사진마을
  • | 2017.02.10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2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바로가기 유형학 사진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분석을 이어나가겠다. 어...

취재

사진 따로, 글 따로는 곤란 [1]

  • 사진마을
  • | 2017.02.07

사진전공학생 개별 사진 분석-1 사진전공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수시로 사진을 찍고 있기 ...

전시회

"집은 살기 위한 기계"

  • 사진마을
  • | 2017.02.06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시 그가 남긴 그림, 건축모형, 조각으로 구성 피카소, 아인슈타인도 감탄한 재능과 혁신  ‘현대건축의 아버...

취재

사진 전공 대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찍나

  • 사진마을
  • | 2017.01.31

3개 대학 28명 졸업작품 분석해보니 특정 공간 기록한 주제 가장 많아 새로운 사회현상 초점이 뒤 잇고 이슈 등 사회담론은 극소수   트렌드라...

전시회

길이 있어 걷고, 걸으니 길이다

  • 사진마을
  • | 2017.01.19

마이클 케나 사진전 '길' 끊어진 길도 가야만 한다 공근혜갤러리, 2월 19일까지 마이클 케나의 국내 네 번째 개인전 ‘길’(The Roads)가 공근...

사진책

청춘의 비결은 사진 속에

  • 사진마을
  • | 2017.01.17

<양승우♥마오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사진집이 나왔다. 같은 이름의 사진전시도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취재

별세한 존 버저, 그의 삶과 사진

  • 사진마을
  • | 2017.01.11

"사진과 글은 각각 독자적 그 둘이 결합하면 확장"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는 많다 예술평론가, 소설가, 화가, 시인 유독 사진 등 시각문화...

전시회

'박근혜 퇴진' 사진은 바닥으로

  • 사진마을
  • | 2017.01.06

10번 촛불집회 모두 참가 이건효 작가 2차~7차까지 사진으로 찍어 전시 중 70대 남성의 항의 받고 일부 떼서 바닥으로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전시회

해상 휴전선 아래 첫 바다

  • 사진마을
  • | 2017.01.06

수협 30년 근무 사진가 장공순 강원도 고성군 저도어장 이야기 스페이스22의 2017년 새해 첫 전시인 장공순의 ‘저도어장’이 5일부터 25일까지 열...

취재

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별세

  • 사진마을
  • | 2017.01.03

화가, 소설가, 예술비평 다양한 활동 그중에서도 사진연구에 많은 업적 사진과 글의 협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존 버거가 2일 세상을 떠났다고 3...

전시회

쿠델카, 집시 한국에 오다

  • 사진마을
  • | 2016.12.28

쿠델카, 집시 연작 첫 국내 전시 말없이 흐르는 이야기의 향연 한미사진미술관, 내년 4월까지 집시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체코 출신 프랑스 사진...

취재

류가헌, 청운동으로 이전

  • 사진마을
  • | 2016.12.27

통의동에 있던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이 청운동으로 옮겼다. 이전 기념 전시로 지하 1층에 있는 1관에선 강운구 ‘경주남산’이 열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