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 파킨슨병이 열어준 세상

사진마을 2016. 10. 19
조회수 10002 추천수 1
   하트사진가 유병완씨

  15년 봉고차로 양말장사하다
 금은방 차렸는데 몸이 좀 이상했다
 
 듣도 보도 못한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방황하다 운명처럼 카메라를 만났다
  
 ‘뭐 이런게 있노’ 싶어 찍고 또 찍었다
 잘 찍은 것보다 좀 이상한 게 좋았다

 
 카메라 들면 아픈 몸도 낫다가
 내려놓으면 다시 아팠다
  
 우연히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하트가 만들어져 거기에 꽂혔다
 
 심장병 소아암 아이들 눈에 들어왔다
 사진전 수익금으로 후원금을 냈다
 전국 순회전시로 캠페인 나섰다

 

 

ubyon05.jpg »  책으로 하트를 만들고 책 뒤에 성모상을 놓고 손전등을 입에 물고 양손에 하나씩 해서 세 개의 조명으로, 찬미하는 심정으로 촬영

 

사진작가 유병완(53)씨에겐 6년 된 ‘친구’가 있다. 파킨슨병이다. 이 친구 때문에 걸을 때 오른팔을 흔들지 못하고 균형을 잘 못 잡는다. 온몸이 아프다.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몸속에 동거하고 있는 파킨슨병을 기꺼이 친구라고 부른다. “하루에 네 번, 이 친구가 밥을 먹는다. 오전 7시, 11시, 오후 3시, 7시, 빨간 밥, 파란 밥.” 왜 이 병이 생겼는지, 원인이 뭔지도 모르고 치료약도 없다. 그저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약을 쓸 뿐이다. 

 
 "쉰 살도 안 됐는데 무슨 이런 경우가"

 유씨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것은 2010년이다. 그때까지 그는 사진과는 인연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의 한 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소쿠리 장사로 집안 생계를 짊어지고 있었다. 군대도 갔다 오고 어느덧 30살이 되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서 봉고차에 싣고 지방을 돌면서 양말 장사를 시작했다. 성실한 유씨는 장사하면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용이 좋았다. 하지만 대형 마트가 곳곳에 들어서고 소매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15년가량 해오던 양말 장사를 정리했다. 한 1년 쉬다가 대구 교동에 금은방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연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몸이 아파왔다. 이상했다. 대구의 병원에선 병명을 알지 못해 서울 아산병원으로 가보니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2010년 뇌병변(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많이 방황했다. 쉰 살도 안 되었는데 사람이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술도 먹고 화도 많이 났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지 싶었다.”
 그 무렵 지인이 그에게 카메라를 권했다. 처음 찍어보는데 ‘뭐 이런 게 다 있노’ 싶었다. 재미있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새로운 인생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절망의 순간, 힘겹게 집어든 카메라가 이젠 유씨의 존재 이유가 됐다. 틈틈이 꽃, 수목원, 바다, 제주, 자연을 찍고 또 찍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으로 만들어진 하트 모양을 발견한 뒤 ‘하트 사진’에 몰입했다. 낮에는 금은방으로 생계를 잇고, 밤에는 편치 않은 손발로 셔터를 누르는 고된 작업이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서울 나우갤러리에서 ‘하트 사진’ 초대전을 열 만큼 성과를 냈다. 올해부터 심장병·소아암 어린이 후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 8월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연 사진전 수익금을 심장병·소아암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낸 그는 전국 15개 시도 순회 전시를 준비중이다. 
지난달 29일 대구에서 유병완 작가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뒤 여러 차례 전화·페이스북 인터뷰도 곁들였다.


“이런저런 조명 쓰니 그림 달라져”

ubyon0001.jpg » 작업중인 유병완 작가

 -사진의 매력이 무엇이었나?
 “잘 찍은 사진이 아니라 찍긴 찍었는데 좀 이상하게 나온 것이 좋았다. 내가 찍었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 것, 내가 못 본 것을 사진에서 발견할 때 좋았다. 남이 찍은 사진이 나의 것보다 더 좋아 보이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걸 계속 찍었다. 내 사진이 더 좋아 보일 때까지. 제주도는 삼사십 번이나 발걸음을 했다.”
 -뭐 특별하게 찍을 것이라도 있었나?
 “조리개를 조절해보니 다른 것이 나오더라. 조여보고 열어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 6년 동안 1테라바이트짜리 외장하드가 17개 쌓였다. 50만 컷 정도 찍었다. 카메라 여럿 망가졌다. 풍경을 찍어서 큰 상도 여러 차례 타고 전시에도 참가했다.”
 그러던 유씨는 3년 전에 후배와 대화를 나누다가 손 앞에 있던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심히 하트 모양을 만들면서 “이거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집으로 가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는데 너무 밋밋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조명을 비춰보니 달리 보였다. 직선으로 빛이 나가는 손전등을 구입하고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점점 더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하트 작업도 발전시켜나갔다. 벽화나 바닷가에서 빔으로 하트를 쏘기도 했고 야광별 스티커를 방 천장에 붙여놓고 작업도 했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유씨는 “책은 문자적 지식과 정보, 상상과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런데 나는 책에서 하트를 발견했다. 희망을 주고 삶에 즐거움을 줄 예쁜 하트가 책 속에 있었다. 책이 나의 캔버스가 되었다”라고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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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씨는 1주일에 7번 작업한다고 했다. 매일 한 컷은 누른다는 뜻이다. 일을 마치고 밤 11시쯤 되면 방에 들어가서 새벽 서너 시까지 촬영한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잠을 잘 때가 된다. 몸이 아플 때도 카메라만 들면 안 아프다가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다시 아파 온다. 그러니 매일 찍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카메라는 마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 삶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누가 따라 하거나, 혹은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두어 번 내가 하트 찍는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한 달을 못 버티더라. 이 작업은 집요하게 붙어야 가능하다. 삼각대를 놓고 양손에 손전등을 들고 엄지발가락으로 릴리스를 통해 셔터를 누른다. 1초에서 5초 정도 노출을 준다. 그런데 이것은 노하우의 문제가 아니니 다른 사람이 내 작업을 흉내 낸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나도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찍어낼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준다. 지식은 공유할 때 비로소 지식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올해 8월 대백프라자 전시 때 심장병·소아암 어린이 돕기 후원금을 냈다고 들었다.
 “병원에 다니면서 보니 어린아이들의 힘든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장애 3급이지만 아이들이 아픈 것은 다르다. 아이들이 자신의 병을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최근에 내 병이 좀 더 진행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하다. 대백프라자에서 54점을 전시했는데 43점을 팔았다. 수익금 1500만원을 월드비전에 보냈다. 대백프라자에서 내가 전시를 하는 취지를 듣고 대관료를 50% 깎아주었다. 고마웠다. 광주광역시에서 다음 전시를 하고 싶다.”
 -왜 광주인가? 그리고 전시 계획은?
 “달구벌과 빛고을이라고 해서 ‘달빛동맹’이라고 한다는데, 아는가? 영남과 호남은 상생해야 한다. 대구에서 사진을 하는 내가 광주의 소아암 환자, 심장병 환자를 돕겠다는 뜻이다. 광주 전시부터는 전시장에 모금함을 두고 천원이든 만원이든 모으려고 한ubyon001.jpg » 유병완 작가다. 광주 전시에서도 사진이 팔리면 그 수익금을 전액 광주 월드비전에 보낼 것이다. 모금함에서 나온 돈은 다음번 전시의 전시비용으로 쓸 것이다. 광주 사람들이 모아준 돈으로 그다음 지역의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국의 15개 권역을 돌고 나면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전시하고 싶다. 1년에 두 번 정도 할 테니 칠팔 년이 걸리겠지.”
 -얼마가 있어야 전시를 할 수 있는가? 후원 캠페인도 설명해달라.
 “광주 전시를 위해 프린트 액자 도록 등에 돈이 필요하고 전시장 대관료도 든다. 내가 작품 네 가지를 에디션 5개씩 해서 판매용으로 내놓았다. 가로 150㎝, 세로 100㎝짜리로 디아섹 액자를 포함하여 한 작품당 200만원이다. 후원 캠페인은 30만원부터 50만원, 100만원, 200만원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사진전이 끝나고 나면 후원회원 본인이 가격에 맞게 직접 고른 사진을 액자에 넣어 포장해서 원하는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한다.”
 병과 더불어 함께 살고 있는 유병완 작가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용기와 행복을 주고 싶다고 했다.
 “유명 작가도 아니고 그리 사진을 잘 찍는 사진가도 아니다. 하지만 내 사진에는 사랑과 희망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시간 동안 그들과 같이 행복하고 싶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행복한 사진을 만들어 주는 아저씨이고 싶다.”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유병완 작가 mois6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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