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여번의 가을을 보내면
디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감 더하기 '기다림-설렘-서운함'
--- 신림동 구둣가게 사장 오상훈
드림위즈의 블로그에서 닉네임 ‘지연심’으로 활동하는 오상훈(40·서울 관악구 신림동·이하 닉네임으로 사용)씨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활동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생활사진가에게 사진을 언제 시작했느냐고 물어보면 진지하게 사진공부를 한 시점을 말한다. 사실은 그 전에도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을 것 같은데도 그 경력은 없는 것으로 치곤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지연심’의 경우 햇수로 진지한 사진 경력만 6년이 넘었다고 말한 셈이니 굉장한 내공일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블로그를 살펴봤다. 인터넷세계에서 두루 먹힐만한 고수의 면모도 보였으며 길거리사진가의 스냅사진도 있고 예술적인 장르를 슬쩍 넘나드는 사진도 보였다. 생활사진가 열전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직업은 따로 있다. 신림동에서 구두가게를 열고 있다.
“드림위즈의 블로그가 한창 인기 있을 무렵 그곳에서 ‘열혈남아’란 분의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콤팩트카메라를 샀는데 매뉴얼을 독파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초보들처럼 심도를 얕게 하는 것이 잘 안된다는 단점과 부딪히면서 서서히 SLR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와중에도 필름카메라를 병행해서 사용했다. 디지털의 경우 담배를 끊는다는 조건을 걸고 겨우 ‘마나님’의 재가를 얻어 20D를 구입했고 결국 5D까지 갔는데 이젠 거의 필름카메라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를 쓰지 않고) 필름카메라를 쓰는 이유는 뭡니까?
=‘필름카메라 특유의 색감….’ 뭐 이런 게 아니고 전 세 가지 이유로 필름카메라를 씁니다. 하나는 기다림입니다. 찍고 나서 현상하고 인화 혹은 스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 기다림이 좋습니다. 둘째는 설렘입니다. 뭐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다리는 동안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은 디지털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서운함입니다. 설레면서 기다렸지만 결과물은 불만스러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역시…. 또 아니었구나!”라며 아쉬워하는 마음이 바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곤 합니다.
-주력해서 찍는 대상이 따로 있습니까?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인물을 가장 즐겨 찍습니다만 꽃도 찍고 경치도 찍습니다. 빛을 이용한 사진을 주로 노립니다.
그에게 드림위즈의 블로그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 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도 그렇지만 사진을 잘 찍는 여러 고수가 지연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파천, 즐거운 세상, 날찐 등 드림위즈의 이웃 블로거들이 애정이 어린 덧글로 자극을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진사이트나 블로그들과 다르게 막연히 사진이 좋다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우린 사진에 대한 불만, 결점 등을 편하게 짚어가면서 아프게 꼬집는 덧글을 다는 문화가 정착이 되어있습니다. 물론 첨부터 그럴 순 없었죠.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서로 사진에 자극이 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서 다른 커뮤니티로 갈 생각들이 없더군요.”
-본인 사진의 특색이나 스타일 같은 것이 있다면….
=애매모호함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소위 말하는 ‘칼핀’(원하는 곳에 아주 정확히 초점이 맞는 것을 가리키는 사진계의 속어)을 싫어합니다. 초점이 좀 흐리더라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약간 감추어진 듯한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루엣 사진도 찍곤 합니다. 예를 들면 꽃을 찍더라도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에 비친 꽃을 찍는 그런 식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합니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대부분이 느끼지 못한다면 실패한 사진이라 할 것입니다.
-테마를 갖고 사진작업을 하십니까?
=횡단보도를 테마로 삼고 진행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앵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에서 횡단보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접어버렸습니다. 주변을 너무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나를 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 같네요. 예컨대 필요하다면 길 한복판에 드러누워서 찍는 것도 감수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테마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전시회를 한번 열고 나면 작가라고 불러주더군요. 그런 의미의 전시회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사진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희망은 늘 있습니다. 좀 넓은 공간에서 크게 사진을 걸어서 좋은 분들을 모시고 싶군요.
-사진 찍는다는 것이 재미있습니까?
=예전엔 회사에 다녔는데 그 땐 사진 찍을 시간이 정말 없었습니다. 일주일 중 딱 한차례 일요일 새벽이 아니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 사진을 찍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나는 편입니다만 생각해보면 그런 자투리 시간에 사진을 찍던 시절이 훨씬 열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간절하게 사진을 찍고 싶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약간 여유있게 사진을 대합니다. 재미요? 저는 주변의 지인들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찍고 나면 바로 인화해서 주질 않아요. 예를 들면 2007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이웃집 가족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딱 1년이 지난 뒤인 2008년 크리스마스 무렵 때 줍니다. 계획적으로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다가 불쑥 받아든 자신들의 1년 전 모습을 굉장히 좋아라 합니다. 사진은 기록 아닙니까? 1주일 전의 일은 잘 기억하겠지만 1년만 지나면 잊어버리기 쉬운데 그때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이니 사진의 속성을 정확히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진 찍는 행복함 중의 하나라고 봐요.
지연심은 여러 사진을 보내왔다. 그 중 기억나는 사진이 있는지 물었더니 선운사에서 찍은 꽃무릇이야길 했다. 아는 분들과 여럿 함께 출사를 갔었는데 한바퀴 다 둘러보고 돌아나오던 중인데 스님이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꽃무릇 밭에 물을 뿌리는 것을 목격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을 주는구나”라고 하고 지나갔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마치 비 오는 날 찍은 것 같은 사진을 남길 수가 있었다.
▲ 아침에 한 이별
“유명 출사지에도 간혹 갑니다. 일출을 보러 가기도 하고 큰 절에도 갑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남들이 다 찍는 사진보다는 가다 오다 발견한 우연한 장면들을 건지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그런 것 같아요. 100명이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찍더라도 서로 본 것이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연심의 사진을 감상해보자. 더 많은 사진은 그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blog.dreamwiz.com/onalja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가을은 타는가








▲ 채은이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