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우리가 살고 있었네

사진마을 2016.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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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사진집 ‘오늘의 조선족’

중국 동북 삼성 26년간 기록…이주와 정착, 삶과 놀이 ‘파노라마’

사전조사, 자료수집, 구술, 면담 등으로 재현해낸 학술적 가치도


kww02.jpg » 윷놀이에서 모가 나오자 열광하는 조원들.2006. 2 아라디촌

 

사진가 강위원의 사진집 ‘오늘의 조선족’이 나왔다. 그가 199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중국 동북 삼성(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궤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하여 사진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인간가족>전시는 지구촌 곳곳 전 세계 인류의 생로병사를 다뤘다. 지구 차원의 서사를 보여주었으니 그 후 많은 사진가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생로병사란 인간의 생애를 통째로 언급하였음을 말한다. 이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세분화한다면 대륙별, 국가별, 민족별 통사가 될 수 있다. 또한 사랑, 행복, 노동, 전쟁, 평화로 나누어 각론이 될 수가 있다.

 

  시기적으로는 1990년부터 26년간의 기록이며 공간적으로는 중국 동북 삼성의 기록이며 민족지(에스노그라피)적으로 보자면 그 지역에 사는 조선족의 기록이다. <오늘의 조선족>은 방대한 구성으로 체계를 잡았다. 목차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다. 

 순서에 따라 이주와 정착, 정겨웠던 사람들, 농경문화와 삶의 현장, 축제와 세시풍속, 교육, 노인협회, 통과의례로 이어진다. 중간에 ‘내가 만난 사람들’이란 것이 하나 들어간다. 한 장씩 넘기다 보니 거듭해서 <인간가족>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중국 동북 삼성의 조선족들의 애환과 기쁨과 생의 마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잠깐 들러서 촉발된 순간의 감정을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 연구자의 자세를 충실히 견지하여 사전조사, 자료수집, 라포 형성, 구술, 면담 등의 과정을 사진으로 재현해낸 훌륭한 학술서적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었다. 사진을 필설로 설명하는 것이 가당찮은 일이지만 여러 장이 섬광처럼 날아들어 가슴에 꽂혔다.

  2006년 8월 유하에서 찍은 노부부는 꽃밭에 서있다. 할머니의 꽃무늬 옷은 꽃밭의 꽃과 겹쳐서 녹아들었다. 윷을 놀다가 모가 나와 기뻐 춤추는 장면을 보면 한반도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쳤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방에 가족앨범을 붙여놓고 살았다. 벽과 천장이 만나는 지점에 액자에 넣어서 걸어둔 가족사진은 특이한 현상이었다. 최소 3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들의 돌사진, 증명사진, 결혼식 사진, 관광지에서 찍은 기념사진 등이 액자 안에서 재구성되어 걸렸다.(책 190쪽) 이는 마치 작품사진을 걸어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식은 가족의 작품이다. 액자 아래 부부가 서 있다.
 
  <인간가족>이 서양사람들의 관점에서 지구촌을 바라봤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제한적이었다는 맹점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것에 반해 <오늘의 조선족>은 한국인 강위원이 같은 핏줄의 조선족을 기록하였으니 구체적이고 친숙하다는 강점이 있다. 지구촌 곳곳에 흩어진 한인사회의 디아스포라는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소중해지는 기록이다.
 

kww03.jpg »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한 노인회 회원들. 2006. 2 아라디촌

kww05.jpg » 악무를 즐기는 이상준, 2000 2월 안도현 장흥향 새마을

kww06.jpg » 대보름 공연을 위해 연습을 준비하는 여인. 2005. 2. 신빈시 왕청문조선족촌

kww07.jpg » 언제나 고향의 꿈을 꾼다는 경상도 출신의 할머니. 1999. 11 왕청현 하마탕

kww09.jpg » 간장을 대리고 있는 박춘화(56세)여사. 2000. 3 내두산촌

kww11.jpg » 꽃밭에 둘러싸인 강지산(71), 김관숙(69) 부부. 2006. 8 유하

kww13.jpg » 여득호(하동66), 문제순(화순 64) 부부. 2000. 4 발해진 강서촌

kww15.jpg » 모주석의 장강도하를 기념해서 만든 치수절의 식전행사에서 군무를 추고 있는 여인들. 2004. 7. 라북현 동명향

kww17.jpg »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자기 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전 가족이 대문 밖까지 나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전송을 한다.. 2000. 4 조양천

kww18.jpg » 혼례식장에서 큰상을 받은 신랑 신부. 2000. 3. 안도현 복흥촌

kww19.jpg » 가족들이 도열한 사이로 연회장에 입장하는 회갑을 맞은 부부. 2006. 8. 소가툰

kww20.jpg » 진남순(합천 79세)할머니의 꽃상여. 25년 전에 사망한 남편과 합장을 하기 위해 묘지로 가고 있다. 2001. 7. 안도현 장흥향새마을

kww21.jpg » 꽃과 함께 살고 있는 노인. 조선족이 살고 있는 집에는 어디서나 꽃을 볼 수 있다. 2004. 2. 밀산시 화평조선족향 동명촌

kww22.jpg » 제4회 하얼빈 민속제 개막식을 지켜보는 관중들. 2004. 8. 하얼빈


 한국 사진가들은 한국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진가가 굳이 외국에서 작업을 한다면 몇 가지 명분이 따라야한다. 그 명분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당위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구촌 속의 한인들이다. 그 장소가 일본이든 멕시코든 미국이든 또는 중국이든. 이는 한국인 사진가의 의무라고 불러도 좋겠다. 물론 외국에서 다른 사진을 찍는 한국 사진가도 있다. 그들도 나름의 이유를 들고 고단한 작업을 한다. 사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고민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명분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훼손할 수 없는 가치 중의 하나는 사진이란 매체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진은 기록”이란 특징이다. 뭘 기록하느냐로 이어질 텐데 이는 곧 ‘누가’ 기록하느냐로 이어진다. 한국인이니 나라 사랑을 위해 한국을 보자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근대 한국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선지자들이 근대식 학교와 병원을 세운 것은 그 당시 한국엔 그럴 만한 인적, 물적, 정신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빈틈을 채워준 서양인들이 고맙다. 지금은 다르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수고스럽게 한국현대사의 공백을 사진으로 메워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한국과 북한에서 사진을 찍을 때, 한국에도 사진가들이 있었으나 다른 작업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틈이 있었던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한국에도 사진가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삶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 1970년대와 비교해서 더 많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삶의 다큐멘터리만 사진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 사진가가 한국을 놓쳐버리고, 저버리고 다른 나라를 기록한다면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한국의 삶, 한국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사진을 찍는 것이 빛을 보기 힘들어서 한국을 피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예전과 달리 놀랄 만큼 많은 숫자의 사진가가 활동하고 있으나 한국 다큐멘터리 1세대라는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보자면 이 또한 놀랄 만하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인 강위원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조선족을 찍어왔다는 것이 소중하다. 우리의 흔적을 한국이 아닌 중국땅에서 발견해내는 놀라움이 소중하다. 이제 26년 조선족을 바라본 땀이 결실을 맺어 한 권의 두툼한 사진집이 되어 우리 앞에 등장했으니 소중하다. 강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1990년 처음 연변을 방문하였을 때 만났던 조선족들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릴 때 보았던 풍경들과 부모님의 서랍 속에 간직된 흑백사진의 주인공들이 갑자기 현대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한 듯 보였다. 티 없이 맑고 환한, 애틋한 어딘지 모를 천진함과 자애로움과 우수가 넘쳐흐르는 표정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망향가를 부르고 있는 듯 보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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