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쿠바다] <1>
갈아타는 비행기 삐긋해 돌고 돌아 48시간만에 발디뎌
도착하자마자 누르기 시작해 누르고 누르고 또 눌렀다
"Al Imperialismo Ni Tantico Asi" 체 게바라
쿠바? 쿠바는 어떤 나라인가? 체 게바라, 카스트로, 혁명, 스페인 식민지배, 시가, 헤밍웨이, 미사일 위기 등의 낱말이 먼저 떠오르는 나라. 혁명은 숨이 턱 막히다가 뻥하고 뚫리는 낱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의과대학생 출신이 쿠바의 법대생 출신과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전율이 일어난다. 짙은 시가 냄새와 연기 속에 헤밍웨이가 다이끼리를 마시면서 바다를 바라보다 노인을 떠올린다. 젊은 케네디대통령이 3차 세계대전을 감수하며 큰 한 수를 두었다는 1962년은 역사의 한 장면이다. 더 생각해보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정도가 떠오르고 쿠바 출신 메이저리그 선수나 한국에서 활약한 남자 배구선수가 있었던 기억이 날 뿐이다. 올드카, 탄력 있는 몸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대거 달라진다. 데이비드 앨런 하비나 알렉스 웹이 쿠바에서 찍은 강렬한 사진들이 마구 떠오르면서 쿠바라는 나라는 환상 속에서 신비를 더해가게 된다. 내가 쿠바에서 찍어도 저렇게 나올까? 알렉스 웹의 쿠바는 15년 전인데 지금 가도 그 모습이 남아 있겠나?
그런데 내가 찍어도 그런 사진이 나왔다…. (고 혼자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그 모습들이 남아있었다. 놀라웠다. 그런데 좀 김이 새는 것은 누가 찍어도 그런 사진이 나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드디어 쿠바에 왔구나”
2월 9일 출발해 쿠바에서 머물다가 2월 21일 밤 한국으로 돌아왔다.
9일 오후 김포에서 도쿄 하네다공항으로 가서, 밤 비행기 타고 캐나다 토론토로 가서, 4시간 정도 대기하다가 쿠바 아바나로 갈 예정이었는데 첫 기착지인 하네다공항에서 일정이 대거 흔들리고 말았다. 김포에서 아시아나 항공의 출발이 40분 지연되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환승을 위해 게이트로 가니 문이 잠겨버렸다. 우여곡절이란 단어가 참 적절한 장면이었다. 김포-하네다-샌프란시스코-멕시코시티-아바나. 대기시간까지 합하니 48시간가량 걸려서 현지 날짜로 10일 오후 3시께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대로 되었다면 현지 날짜로 9일 밤 10시께 도착했어야 했고 10일부터 쿠바의 아침을 볼 수 있어야 했는데 근 하루를 날려버렸다. 그러나 “드디어 쿠바에 왔구나” 라는 생각에 불평불만은 스스로 금기사항이었다.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400년 이상 받았으며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쿠바는 해방이 되었으나 스페인이 떠난 자리를 미국에 채운 격에 지나지 않았다. 사탕수수농장 등 주요 경제권이 미국 자본에 예속되어 있었으므로 사실상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놓인 셈이었다. 1953년 7월 26일 피델 카스트로가 산티아고에서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친미 바티스타 정부군의 요새를 습격한 것이 쿠바혁명의 시발점이다. 장렬하게 실패했고 또 실패한 것이 쿠바혁명의 전개다. 체 게바라가 합류하여 게릴라전을 벌였고 점점 숨을 조여가면서 민심을 잃은 바티스타가 두려움을 느껴 망명하고 정부군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형태로 혁명이 성공을 거둔 것이 1959년 1월이다. 그리하여 쿠바는 공산당 1당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2000년 10월에 평양을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중국 베이징을 거쳐 들어갔었으니 이번에 굵직한 사회주의 국가 중에 세 번째로 쿠바를 방문한 것이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쪽이 제공한 벤츠승용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흥분을 감추려 애를 쓰지도 않은 채 셔터를 펑펑 눌러댔던 이후 처음으로 호세 마르티공항에서 쿠바의 국영여행사가 준비해둔 승합버스를 타고 아바나 시내로 진입하면서 나는 창문 너머로 셔터를 눌렀다. 도착해서 찍어도 될 일인데…. 굳이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엉성하게 찍었는데도 “쿠바는 쿠바다”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뛰어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호텔 뒤 해변으로 갔다. 가보니 바로 거기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파도 치는 말레콘’이었다. 2시간 정신없이 찍다가 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48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했으니 호텔에서 쉬었어야 했는데 촬영을 강행군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바닷가에서 시내로 조금 들어오면 거리와 집이 이어진다. 어느 집 마당에서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태권도 비슷한 것을 하고 있
었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태권도였고 ITF 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쉬는 시간에 사범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어봤더니 “헤네랄 초이”라는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General Choi는 누구인가. 최홍희(1918~2002)장군을 말하는 것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부터 최홍희씨의 공이 컸다. 그가 1966년에 대한태권도협회를 만들었고 ITF(국제태권도연맹)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최홍희씨가 정치적 이유로 망명을 떠났고 북한과 잦은 교류를 하였으며 2002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최씨는 공산권 국가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쿠바의 태권도는 ITF, 최홍희씨의 태권도인 것이다. 아하.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아직 한국과 수교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어쨌든 기본 품새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배달민족의 태권도란 점에선 큰 차이가 없는 동작들을 감상했다.
호텔로 돌아올 땐 이미 해가 넘어갔다. 쿠바는 주유소도 멋지네…. 다시 혼미해지면서 첫날이 지나갔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