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시가 주렁주렁 달린 ‘풍경의 인물’

곽윤섭 2011. 02. 10
조회수 18038 추천수 0
첫 한국 개인전 <철학자의 나무>전 여는 마이클 케나
필름 잘 익을 때까지 주머니 넣고 어슬렁어슬렁
삼척 솔섬, 그가 찍은 덕에 LNG 생산기지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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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차림의 한 남자가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강가를 어슬렁거린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 가로등 불빛만이 가물거릴 뿐 주변은 깜깜하다. 늦은 밤이거나 아직 여명이 찾아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새벽이다.

운동화를 신은 이 남자는 이윽고 삼각대를 내려놓고 잠시 카메라를 만지더니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한 시간가량을 주변을 배회한다.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다가 멈춰 생각하다가 또 걸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카메라 속의 필름이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가 찍으면 단순한 주변 광경도 절묘한 풍경으로
 
영국 사진가 마이클 케나의 첫 한국개인전이 이번 주말부터 서울에서 열린다. 2007년 그가 한국에서 강원도 삼척의 솔섬을 찍은 이후로 몇 년 사이에 입소문을 통해서 이 땅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 이름과 사진을 알고 있다. 마이클 케나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몽환적이며 수묵화 같고 한 편의 시처럼 압축적이다. 그의 35년 사진세계의 소재는 다양하다. 화력발전소, 공장, 기차역, 놀이터 등 언뜻 봐서는 소재에 대한 경계가 없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에선 모두 한가지 분위기가 지배한다. 그는 풍경(Landscape)을 주로 찍는다. 그렇지만 그 풍경은 바다, 하늘, 강, 산, 숲과 같이 넓은 자연의 경치에만 국한되진 않아서 공장에선 기계의 부품을 가까이서 묘사하기도 했고 놀이터에서는 그네를 찍기도 했고 깨진 유리창을 보여주는가 하면 화력발전소의 거대한 굴뚝 몇 개를 찍기도 했다. 우리말 단어 ‘풍경’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만 한다. 주변의 모든 광경이 곧 풍경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이번 한국 개인전 <철학자의 나무>는 그 이름에서 바로 직시하듯 나무와 관련된 사진만을 모아 구성했다. 유럽과 미 대륙의 풍경, 그리고 중국, 일본, 한국에서 찍은 풍경 중에서 나무가 들어있는 사진을 선보인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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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 주고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성인이 된 지금, 내게는 언제든 가능할 때마다 찾아가고픈, 더 많은 나무 친구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이젠 어릴 때처럼 나무에 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때처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풍경 사진가’라는 딱지가 붙은 지금, 가끔 왜 인물사진은 찍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나는 인물 사진을 찍는다. 바로 나무의 인물 사진을 말이다.

 
나는 보통, 반 농담으로 ‘나무는 스스로 꾸밀 필요가 없고, 말대답도 하지 않으며, 게다가 지독히 독립적이며, 생생한 아름다움을 가졌고, 내가 장시간 동안 카메라 렌즈를 노출하는 동안 추위 속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인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니 어느 누가 나무를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략)

 
35년 이상 나는 여러 다른 나라에서 나무를 촬영할 수 있는 명예와 특권을 가져왔다. 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대한 감사에 대한 작은 징표로 나의 사진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나무에게 우리 모두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친구 고르듯 하고 한 장소도 여러 날 머물러 요모조모
 
2010년 12월, 홍콩의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품활동에 관한 여러 이야길 들려주고 있다. 10시간이나 길게 노출을 주는 경우엔 셔터를 눌러두고 난 다음에 뭘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마이클 케나는 “뉴욕의 도심이라면 카메라 주위를 떠날 수 없다. (웃음) 산 속이라면 셔터를 눌러두고 자러 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조수의 도움없이 홀로 다니고 고독을 즐기면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사진 찍을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과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귀기 위해) 친구를 고르는 것과 같다. 한눈에 봐서 모르지 않는가. 시간을 두고 지나봐야 알 수가 있는 법이다. 사진 찍을 장소를 고르는 것도 그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곳을 찍기 위해 여러 날을 머문다. 같은 장소라도 매일같이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 등장하는 나무사진들을 포함해 중국, 일본, 한국에서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그도 그런 이야길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예술에 심취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들은 수천 명이 넘는 화가, 조각가, 사진가, 소설가, 음악가, 시인 등이다. 그러나 그 중 특히 어디서 깊은 영향이 왔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명상과도 같은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내 사진에선 하이쿠(일본 고유의 짧은 시 형태)가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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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솔섬, 그가 찍은 덕에 LNG 생산기지 계획 취소
 
이번으로 다섯 번째 한국을 찾는 마이클 케나는 전시를 앞둔 지난 7일 새벽 도착했고 바로 지역으로 내려가 지난번 방문에 이은 작업을 이어나갔다. 전시가 개막되는 토요일에 작가사인회에 잠시 참석하고 나면 다시 촬영지를 찾을 예정이다. 이번 한국방문의 촬영예정지는 강원도 삼척, 부산 인근, 전남 등이다.

 
배추 머리를 하고 안경을 썼지만 날카로운 인상과는 거리가 먼, 사진의 고수 같지 않은 평범한 옷차림을 한 영국출신의 중년남자가 한밤중이나 새벽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가 바로 마이클 케나일지도 모른다. 2012년 하반기 한국에서 다시 한번 전시가 예정되어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도 포함되겠지만 지금 찍고 있을 사진도 들어갈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친구와 사귀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의 홈페이지 www.michaelkenna.com/ 에서 많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의 작업을 본다면 한국은 그가 주력했던 장소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전시와 활동을 하고 있어서인지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엔 강원도 삼척 월촌의 솔섬을 찍은 아름다운 사진이 걸려있다. 2007년에 처음 찍었고 그 후 2009년 LNG 생산기지가 들어서 솔섬이 몽땅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 계획을 일부 수정시켜 솔섬을 보존시키기로 했던 계기가 된 그 사진의 장소다. 홈페이지 사진은 2010년에 다시 찍은 것이니 2007년의 그 사진과 비교해볼 만하다. 뭐든지 조용한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그의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감상하면 어떤 종교의 명상 못지않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조용한 음악 곁들여 사진 보노라면 명상 못잖아
 
이번 전시의 이름인 <철학자의 나무>는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평원에 홀로 서있는 <철학자의 나무>에서 따온 듯하다. 비에이에는 그 외에도 이름붙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작명한 나무들이 산재해있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왕따나무>같은 식이다.

 
전시는 삼청동에 있는 공근혜갤러리(02-738-7776)에서 열린다. 2월 12일 마이클 케나의 사인회와 함께 개막한다. 아직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청동은 여러 생활사진가들이 사랑하는 장소이니 안국역 1번 출구나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설렁설렁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갤러리를 찾으면 좋겠다. 전시는 3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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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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