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 든 50년대 군인과 21C 회사원이 같이

곽윤섭 2009.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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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사진전 ’한국전쟁 기념비’
‘6·25 작가’ 전쟁 60돌 맞아 10년만에 개인전
지루함 벗고 이야기 담아 맛나게 ‘찰칵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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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당진군 송악면 나라사랑공원 한국전쟁기념비, 2008년  


‘동두천 기념사진’ 연작과 ‘매향리 풍경’, ‘민통선 풍경’ 연작 등 6·25 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을 계속 탐구해온 사진작가가 있다. 그 작가에게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2010년은 특별한 해가 아닐 수 없다. 2010년을 한 달 앞두고 작가 강용석이 10년 만에 연 개인전 ‘한국전쟁 기념비’ 전이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2010년 2월20일까지 계속된다.
 
의미는 있지만 재미는 없던 매향리·민통선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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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저격능선 전투전적비, 2007년


이번에 열린 ‘한국전쟁 기념비’전을 언급하기 전에 강용석의 지난 연작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두천 기념사진’은 작가가 1984년 한 해 동안 동두천에 들어가 기념사진사로 살면서 찍은 사진들로 미군 손님을 대하는 한국인 여성의 기념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념사진사의 시각 덕분에 사진 속의 인물들은 전혀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땅의 미군과 한국인 여성들 사이의 문제를 개인사의 틀에서 벗어나 더 현실감 있게 민족사의 틀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평론가들은 이 작업으로 인해 강용석이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한다.
 
후속 작업들도 같은 주제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1999년에 발표한 ‘매향리 풍경’ 연작은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농섬을 대상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미 공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쓰인 이 섬은 온갖 문제를 일으켰다. 강용석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가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당시 주류 언론들도 이곳을 사진과 글로 보도했다. 그 결과 매향리 사격장은 완전 폐쇄되었고 평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어느 한 작가나 어느 한 언론의 노력만으로 이런 결과를 끌어냈다고 볼 순 없다. 마을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투쟁활동을 벌인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은 온통 포탄의 잔해만 남겨진 살풍경한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숱하게 많은 다른 이들이 찍은 매향리와 차별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스럽다. 그냥 빈 땅에 포탄만이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작가는 ‘민통선 풍경’ 연작을 선보였다. 민통선이란 지역의 특성답게 그곳을 경계하는 북한 군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용 마을의 가상구조물과 방호석 등이 주요 소재였다. 얼른 보면 선사시대의 고인돌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로 이런 연작을 했는지 이해할 순 있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닌 테마를 지닌 여러 장의 사진에 대한 표현이라고 봐도 좋다. 이유 없이 그냥 놓인 한 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민통선 풍경’ 연작은 그럴 가능성이 컸다. 여러 장을 동시에 봐줘야 의미가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시 공허하다. 이곳에 간 누구라도 쉽게 찍을 수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면 곤란하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전작과 달리 이해 쉽도록 관객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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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연천군 태국 참전비, 2007년
 
‘한국전쟁 기념비’전은 기존의 강용석 연작과 크게 다른 점이 나타나서 주목할 만하다. 평론가들의 의미 부여도 의미가 있지만 쉽게 표현하자면 사진에 재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지루한 매향리와 민통선에서 확실히 탈출했다. 배꼽을 잡고 웃게 하는 재미나 은연 중에 미소가 머금어지는 그런 재미는 물론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사진을 읽는 맛을 말한다.
 
의미만 있고 재미는 없는 그런 사진들을 숱하게 본 적이 있고, 그런 작가들이 숱하게 많다. 본인들은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고생해가면서 작업을 했고, 그런 작업 끝에 사진을 공개하지만, 아쉽게도 그 결과물에선 의미만 있고 곱씹을 맛이 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에 건다는 것은 관객과의 만남을 염두에 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관객에 대한 장치가 들어있어야 한다. 물론 도록이나 설명회나 강연회, 사진에 대한 설명 등을 통해 의도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평론가들이 전시의 서문을 쓰고 도슨트가 수시로 이해를 돕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사진가는 사진으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 작가가 전시장에 상주하면서 모든 관객에게 사진을 설명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며 그럴 수도 없다. 전시장은 패배와 승부가 순식간에 갈리는 치열한 링과 같다. 관객은 아무런 도움도 없는 상태에서 사진과 직면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들여다본다. 불과 몇 초 만에 승부가 난다. 작가와 미술관이 짐짓 권위와 명성으로 밀어붙이려고 해도 관객의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지나쳐 버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몇 년을 고생한 작가에겐 허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냉혹한 승부가 났다고 해서 관객을 탓할 수 없다. 도대체 관객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작품이 왜 성공하길 바라는가?
 
3년간 50여 곳 돌아다니며 기념비 풍경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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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춘천지구 전적기념관, 2007년
 
강용석의 ‘한국전쟁 기념비’ 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와 국립서울현충원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여 개 지역의 기념비를 소재로 작업한 것들이다. 사진은 이런 식이다.
 
수류탄을 던지려는 어떤 군인(동상) 앞에서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무방비상태로 대화를 나눈다. 춘천 어느 곳의 전적기념관에 있는 장거리포의 포문 앞에선 한 남자가 비스듬히 앉아서 쉬고 있다. 충남 당진의 한국전쟁기념비에선 군인이 부상당한 동료를 업고 있다. 그 오른쪽엔 한 꼬마가 무등을 타고 있다. 전시장의 사진들은 모두 한번 걸러진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은 전쟁에 참가해 피를 흘린 군인들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2010년 한국땅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재해석이며 전쟁에 대한 성찰이다.
 
어려운 평가나 난해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보단 가능한 한 쉽게 ‘한국전쟁 기념비’를 바라보길 원한다.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작가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혹 어떤 날은 운이 좋았을 것이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사람이 등장해 원하는 풍경이 펼쳐져야 가능한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전화인터뷰에서 강용석은 이렇게 말했다.
 
“기념비는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진들에 등장한 기념비는 일상의 공간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약화될 수 있었다. 한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해야만 했다. 1/2초에서 1/4초 사이의 셔터로 장시간 노출을 줘야 했으니 스냅이 불가능했던 작업들이다. 연출은 하지 않았다.”
 
오래 보면 그만큼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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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현충탑, 2007년
 
전시를 시작하는 날 스쳐 지나가는 관객 한 명에게 물었다. “사진들이 어땠어요?”
 
“별로 모르겠어요”
 
작가가 관객을 배려해서 정성을 쏟았다면 관객도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마땅하다. 강용석의 개인전 ‘한국전쟁 기념비’는 그동안의 강용석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한발 더 다가서려는 의지가 보이는 사진들로 이루어졌다. 최소 한 사진당 1분씩은 투자하면서 읽어줄 의무가 있다. 오래 보면 그만큼 많이 보인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한국전쟁 기념비’전은 19층에서 열린다. 같은 건물 20층에선 12월12일까지 ‘하니포토워크숍’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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