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명소답사기⑤
경남 남해군 가천마을 다랭이논
땅이 좁은 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은 세계 어디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손바닥만한 곳이라도 발 디딜 틈만 있다면 뭐든지 심고 볼 일이다. 벼농사를 지으면 논이요 마늘, 깨, 고구마를 심으면 밭이다. 멀리서 보면 흡사 계단처럼 보인다 하여 계단식 논·밭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경남 남해군 가천마을에선 다랭이논이라 한다. “밭 갈던 소가 한눈팔다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처럼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진 이곳에서 산비탈을 깎아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만든 논은 작게는 10㎡(3평)부터 큰 것은 1000㎡(300평)에 이른다. 가천마을엔 모두 680개의 다랭이가 있고 108개의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아기자기한 생김새로 인해 사진가들에게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농가월령가를 읽어두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논 갈 때와 써레질하고 모내기할 때 그림이 각각 달라질 것이고, 가을이 되어 벼가 익어갈 때와 수확한 뒤의 논은 또 확연히 달라진다. 뭘 심는지에 따라 색도 달라질 것이고, 비가 오거나 해가 날 때도 사진이 달라진다. 아침, 저녁으로 빛이 달라질 때 벼의 색과 논의 음영이 따라 바뀌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딱히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가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어서 언제 가든지 한 장씩은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다만 마을의 골목길과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랭이의 각도와 폭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유심히 관찰해야 균형잡힌 사진을 구할 수 있다.
다랭이 마을엔 민박집이 20여채 있다. 마을 주민이 채 2백명이 안되는 이곳은 이제 연간 20만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가 됐다. 영화와 광고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졌고 텔레비전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마을 이장 김학봉(63)씨는 “인심 좋고 경치 좋은 우리 마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고맙다”면서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쓰레기는 제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티베트 차마고도와 중국 운남성에도 계단식 논이 있고 필리핀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거대한 규모의 계단식 논이 있지만 가천마을의 다랭이논은 따라내려 가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2003년 4월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 남해군 창선도와 삼천포를 연결한 다리다. 건교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랭이 마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독일마을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이 곳은 재독일 교포의 정착과 휴양지 마련, 한국에 거주하는 독일인의 주말 휴가지 조성, 독일문화의 내국인체험과 발전된 유럽건축양식의 국내 소개등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