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잠 못드는 밤

곽윤섭 2015. 03. 31
조회수 45378 추천수 0

80년대 이태원 생생한 기록k.jpg

좀 노는 사람들과 이방인의 땅

 

 

 

 1980년대 중반 이태원을 담은 김남진 사진작가의 ‘이태원의 밤’이 <눈빛사진가선> 열두 번째 사진집으로 나왔다. 80년대 중반 이태원의 밤엔 누가 살고 있었으며 어떤 곳이었는가? 김남진이 1984년~1986년 사이에 찍었던 이태원은 지역적 특성상 나이트클럽, 디스코클럽, 게이바 등이 엉켜있었고 이곳은 당시로서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규범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겨지던 곳이었다. 이런 생각을 80년대 중반 이태원을 찾던 손님이나 업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 번도 가본 적 없이 이태원이란 지명만 알고 있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은실(현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은 저작 <지구화 시대 근대의 탈영토화된 공간으로서 이태원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2004·푸른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0년대 이후 지구화(global)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초국가적 공간이 아니라 이태원은 냉전시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한국전을 거치면서 이태원은 서울 주둔 미군기지로 변모했고 이들을 위한 가게, 주점, 기지촌이 들어서면서 미군 위락지대가 되었다. 1960년대에 들면서 이태원과 한남동에 외국공관이 들어왔고 1970년대 초반 부평에서 121 후송병원이 미8군 영내로 이전하면서 1만 여명의 미군과 관련 종사자들과 상인들의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현재 모습의 이태원이 형성되었다.1  70년대와 80년대까지 미군의 주둔은 한국정부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안전판으로 여겨지고 있었고 88올림픽이 열리면서 이태원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그러니까, 김남진이 찍고 있던 8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이태원밖에 없었다. 남대문, 신촌, 인사동은 말도 통하지 않았고 외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술집, 그러니까 유흥문화를 즐길 곳도 없었다. 이태원엔 미군전용 클럽이 있고 한국여성들이 클럽에서 일하고 2차를 따라나가 성매매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좀 노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정부로서도 88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이 찾을만한 이국적인 명소는 한국전쟁 이후 자생한 이태원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짝퉁명품이나 불법 위락행위가 판을 친다고 하더라도 이태원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단속할 생각이 없었다.

 

 한국인이 갈 수 있는 클럽도 있었지만 이태원의 주요 손님은 외국인이었다. 이태원이란 탈영토화된 공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주체는 한국인으로 업소에서 일하는 웨이터와 무용수, 이태원의 밤을 찾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식당과 가게 상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적어도 90년대가 오기 전까지 “두 주체였던 외국인과 한국인들은 이태원만이 이방적인 공간이었던 냉전 체제하에서는 서로 이해를 같이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 유지했으나 초국가적 지구화시대가 오면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2  88올림픽은 구 이태원의 클라이맥스였고 곧 독화살로 돌아왔다. 올림픽 이후 이태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정부는 이곳을 국가적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양성화시키기 시작했다. 곧 단속, 규제가 이어졌으며 재정비되기 전 이태원의 마지막 흥청거림을 김남진이 포착해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이태원만큼 특수한 공간이 흔하지 않으며 80년대 중반은 절묘한 시기였다. 이 이국적인 시공간의 민족지적 기록이 오롯이 사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원천적인 삶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부족했던 시기의 한국사진역사에서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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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진의 이 사진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는 당시 이태원에서 보이는 패션이다. 80년대 중반 이태원의 밤은 팝송이 끊이지 않았다. 패션은 팝스타를 따라 이동했다. 사진에서 보는 웨이터, 젊은 손님들, 게이들의 옷차림에서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유니섹스 모드를 목격할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은 성역할성의 변화로 이어졌고 새로운 의식구조는 그들의 복식구조로 가장 먼저 표출된다.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입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더 오래되었고3 꾸밀 줄 모르던 남성들도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앤드로지너스룩4이 80년대 중반 한국 서울의 이태원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성별 차이가 없다 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젊은 남자의 머리나 여자의 머리나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 롤랑 바르트가 저서 ‘밝은 방’의 전반부에서 ‘푼크툼’의 개념을 정립해나가려고 애를 쓰면서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 < 모스크바에서 5월 1일>을 두고 모자, 스카프 등 1959년의 모스크바 패션을 언급하면서 민족지적으로 풀어가려 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김남진의 <이태원의 밤>을 보면서 이태원이 아닌 나머지 다른 곳의 80년대에 대한 추억도 떠올린다. 사진이 아닌 그 어느 매체도 가질 수 없는 힘이 여기에 있다.
 
 대학을 졸업한 김남진은 퍼스널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졌고 1주일에 두세 번 밤의 이태원을 찾았다고 했다. <지골로>같은 클럽의 웨이터, 아가씨들과 친해지면서 사진 작업을 이어갔다. “어느 날 새벽은 게이들을 찍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미군과 같이 있는 한국여성을 찍다가 혼쭐이 났으나” 딱 그 두 번뿐이었고 3년 반 동안 무난히 사진을 찍었다. 몰래 찍는 스타일이 아니라 말을 붙이고 친해지고 난 뒤에 찍는 정공법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니 가능하다. 어떤 날은 찬숙이란 게이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클럽 웨이터들이 “너 그러다 당한다”고 놀리기도 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으로 87년 4월 당시 종로에 있던 파인힐 갤러리에서 <이태원의 밤> 사진전을 열었다. 이명동 선생이 당시 사진평을 썼다. “김남진의 포토 르포르타주 ‘이태원의 밤’은 한마디로 무척 어려운 주제의 선택이었고 접근이었다. (중략) 요즘 대학 출신 젊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예술적 감각의 사진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반해 그가 보여준 르포르타주의 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한다” 시대가 건너가고 있는 순간엔 시대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나 지금이나 획기적인 사진이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80년대 중반 ‘이태원의 밤’이 제대로 보인다.  
 
 1) 이태원관광특구 홈페이지 참고

   2) 김은실, <지구화 시대 근대의 탈영토화된 공간으로서 이태원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2004·푸른사상)

   3) 톰보이(남성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패션이 당시 이태원에서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4) 그리스어에서 유래, 남자와 여자의 특징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패션. 남자는 여성처럼, 여자는 남성처럼 입는다.


 

   곽윤섭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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