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동’으로 ‘사회 노동’을 바꾸다

곽윤섭 2015. 01. 04
조회수 15863 추천수 1

   [신화가 된 사진] <2> 아동노동 규제의 기치를 든 루이스 하인
 교육과 개혁의 도구로 카메라 든 다큐 선구
   가난했던 경험 살려 삶의 현장에 렌즈 밀착

 

640px-AddieCard05282vLewisHine.jpg » 방적공, 12살, 버몬트 면화공장, 1910/루이스 하인.

 

사진이 넘쳐나는 지금과 달리 사진이 막 탄생하여 상대적으로 귀하던 시절에는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명함판 형태의 사진을 선물로 주고받는 유행이 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취미였다. 큰 틀에서 사진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사진이 탄생하고도 40~50년 뒤였다고 비키 골드버그는 말하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개혁’을 위한 사진, 혹은 ‘사회참여사진’은 미국에서만 따진다면 최초는 남북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북군은 남군 포로수용소에 갇힌 “뼈만 남은 앙상한 북군병사”들을 사진으로 찍어 뉴욕에서 전시를 열었고 격분한 북부연방의 시민들로 하여금 주머니를 열게 하여 전비를 더 모으는데 일조하기도 했지만 전쟁을 빨리 끝내자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했다.
 더블린에서 태어난 영국인 사회사업가 토마스 바나도(1845~1905)는 고아원을 만들어 평생 10만 명가량의 아이들을 거리에서 구조하고 양육하고 돌봤다. 바나도는 연례보고서에 사진을 넣기도 하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적극활용했다. 나중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사진 사용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사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사회개혁 사진의 초기형태라고 볼 수 있다.

33152_std.jpg » 소년의 삶은 이렇게 바뀌었다. 토마스 바나도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통한 사회개혁의 사례는 다양하지만 다음에 제대로 다루기로 하고 그 중에 단 한 명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루이스 하인(1874~1940)이다. 하인은 사회개혁에 도움이 되는 여러 사진을 찍었지만 가장 중요한 공적은 아동노동에 대한 고발이었고 이것이 미 의회에서 법안으로 연결되어 제도적으로 아동노동에 대한 규제가 생기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루이스 하인보다 조금 앞서 뉴욕 빈민가의 열악한 환경을 사진과 글로 취재해 신문지면을 통해 알리고 책으로도 출판해 사람들에게 알렸고 도시 주거 상황이 개선되도록 앞장선 제이콥 리스(1849~1914)와 더불어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뚜렷한 사례였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얼른 생각하면 역사의 현장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찍은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드물고 루이스 하인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아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사진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rooklyn_Museum_-_Climbing_into_the_Promised_Land_Ellis_Island_-_Lewis_Wickes_Hine.jpg » 약속의 땅으로 상륙하는 이민자들, 엘리스 섬, 1905/루이스 하인

hine_italians.jpg » 이탈리아 이민자들, 1904~1909/루이스 하인  

 

  루이스 하인은 미국 위스콘신주 오쉬코쉬에서 태어났고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육학을 전공했다. 주립사범학교의 교수였던 프랭크 매니가 뉴욕의 ‘에티컬 컬쳐 스쿨’의 총책임자로 부임하여 하인을 조교로 임명한 것이 하인의 나머지 인생을 뒤흔들었다. 프랭크 매니의 지시에 따라 에티컬 컬쳐스쿨이 새로 만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04년에 에티컬 컬쳐스쿨의 교사로 부임했고 이때부터 뉴욕 엘리스섬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찍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도 찍기 시작했다.


 루이스 하인은 사회개혁 잡지 ‘서베이’지를 위해 사진을 찍었고 1906년에 미국 최초의 사회공헌재단인 ‘러셀 세이지재단’의 사진가가 되었다. 이 재단에서 루이스 하인은 피츠버그의 철강공장과 노동자들을 찍어 ‘피츠버그 서베이’에 동참했다. 피츠버그 서베이는 러셀 세이지 재단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공업도시 피츠버그시에 대한 선구자적인 사회학 연구를 가리킨다. 1907~1908년에 걸쳐 각 방면에 걸친 70여 명의 전문가가 이 연구에 가담했는데 결과물은 6권의 보고서로 남았다. 이 연구는 노동조건, 거주문제, 빈곤, 교육 등을 포함한 미국 도시의 전반적인 생활 상태에 대한 최초의 연구 중 하나다.


 1907년에도 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는데 학생 중에는 당시 16세의 폴 스트랜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해에 전국아동노동위원회(NCLC)의 의뢰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00년 미국 센서스에 따르면 5살~8살 사이의 미국 전체 아동들 중에서 6분의 1에 해당하는 1,752,187명이 급료를 받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1880년도의 1,118,356명과 비교했을 때 50퍼센트나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형편없이 열악한 산업 공장에서 몇 푼 되지 않는 급여를 받는 미국의 아동노동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아동노동을 고발하는 사진을 수많은 매체에 실었지만 하루아침에 법안이 마련되진 않았다.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기업가들과의 힘겨루기를 겪었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은 ‘키팅-오웬 법안’이 통과된 1916년으로 14세 이하의 아동은 모든 노동을 금지했고 광산이나 채석장의 경우엔 16세 이하의 노동을 금지했다. 1924년이 되어야 아동노동수정조항(Child Labor Amendment)이 의회를 통과하게 되는데 18세 이하의 노동을 금지하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주들이 추인을 거부해 실제 모든 주에 걸쳐 시행이 되기까지는 먼길이 남아있었다.

3a01124r.jpg » 아동노동/루이스 하인

01581v.jpg » 방적공장의 아동노동/루이스 하인

01366v.jpg » 방적공/루이스 하인

bowling-pin-setters.gif » 볼링핀 세우는 어린이들/루이스 하인  

02366v.jpg » 어린 노동자들, 가운데 있는 가장 어린 아이는 10살~11살 사이인 것이 명백하다. 매사추세츠/ 루이스 하인

hine_19.jpg » 탄광의 어린 노동자들/루이스 하인  

 

  하인은 사진을 교육의 주요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동안 수 천장의 사진을 매체에 실었고 전 미국민의 심금을 울렸으며 여론이 움직였다. NCLC가 주도한 아동노동제한 입법과정에서의 그의 사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NCLC의 상징처럼 되었고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역사에서 선구자 그룹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아동노동 사진작업이 쉬웠을 리가 없다. 공장 내부의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공장을 지키는 경비나 보안요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목숨까지 협박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반 대중들은 비도덕적인 아동노동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동노동의 실태를 폭로하는 사진은 싼 노동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공장주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아이들이 일하는 일터에 들어가 화재감시원, 엽서가판원, 성경판매원, 실직한 전직교사 역할도 있고 심지어는 공장의 기계들을 기록하는 공식사진사 역할로 위장하기도 했다.
 하인이 다른 사회개혁 사진가들과 차별성을 갖는 것은 본인의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동노동에 대한 혐오감과 아이들에 대한 연민 어린 감정이입은 책을 보고 공부하거나 신문에서 읽은 느낌이 아니다. 그 자신이 어렸을 때 가구공장, 은행, 소매점 같은 곳에서 주 6일, 하루 13시간 노동을 하면서 급여라곤 4달러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동노동 현장은 남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으로 건너가 미국적십자사의 활동을 기록했다. 1920년대가 되자 루이스 하인은 미국의 흑인이란 주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 돈도 벌어야 했지만 또 동시에 남부지방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여론을 환기할 목적으로 남부지방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남부에서도 노동현장을 찍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은 빈민가의 형편에 더 끌렸다. 흑인 빈민가는 영양결핍, 높은 영아 사망률, 문맹 등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 루이스 하인은 가난한 자들을 찍었지만 미국 흑인 중산층도 찍었다. 거기에  더해 루이스 하인은 남부지방에서 흑인들을 위해 새로 문을 연 학교와 대학들의 어린 학생과 대학생들의 초상사진도 찍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까지 근대산업사회 건설에 기여한 인간의 헌신에 강조점을 둔 ‘노동의 초상’ 연작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1930년 뉴욕시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건축현장의 노동자들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초고층 작업현장인 만큼 현장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아주 위험했고 루이스 하인의 사진촬영작업도 위험했다. 가장 좋은 앵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루이스 하인은 300미터 높이의 공중에 특별 제작된 바구니를 매달고 그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대공황시절에는 다시 적십자사와 일을 했는데 미국 남부지방의 가뭄사태 구호활동을 찍었고 뉴딜정책의 하나였던 테네시유역개발계획(TVA)도 기록했다. 그 외에도 그는 대규모 취로사업계획(WPA)을 통해서 산업의 변화와 그 변화가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1936년에 WPA 산하의 ‘미국 재발견계획’ 사진가로 선정이 되었으나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말년에 그는 정부와 기업의 후원이 끊어지는 바람에 곤궁한 입장에 처해 집을 담보로 돈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2012-Lewis-Hine-133906933676.jpg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공사 현장/루이스 하인

Raising_the_Mast_Empire_State_Building_by_Lewis_W_Hine.jpg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공사 현장/루이스 하인

2234808620_b69c0937c3.jpg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공사 현장/루이스 하인   

port_hine_022_v36.jpg » 증기펌프에서 일하고 있는 발전소 노동자, 1920/루이스 하인
 
  1930년도 후반에 이르러 경제적 형편이 점점 어려워졌고 매체와 출판사의 일거리도 간헐적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1939년에 베레니스 애보트 등의 도움으로 ‘리버사이드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생 말년의 반짝 기쁨이었다. 주택소유자 자금대출회사는 하인의 집 소유권을 회수하려고 들었고 그해 부인이 폐렴으로 세상을 떴다. 1940년에 결국 집을 잃었고 주인에서 세입자의 신분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11월 루이스 하인도 세상을 떴다.


 루이스 하인이 세상을 뜰 무렵까지도 그의 사진은 잡지나, 교과서에 실리고 있었으나 그의 이름 자체가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아동노동규제에 대한 그의 공헌은 감춰질 수 없었고 이제 미국 사진역사뿐만 아니라 미국의 사회개혁의 역사에서도 그는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NCLC는 ‘루이스 하인 상’을 제정했고 해마다 청소년에게 헌신한 사람 10명을 뽑아 시상하고 있다. 루이스 하인이 죽고 그의 사진은 ‘포토리그’에 기증되었다. ‘포토리그’가 해산당한 뒤 사진들은 미국의회도서관으로 일부가 보내졌고 현재 의회도서관은 루이스 하인의 사진을 5,000장 넘게 보관하고 있다.
 사진이 탄생한 뒤 역사상 가장 사회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사람 중의 한 명인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사실 처음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받아 줄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스트만 코닥 재단은 생각이 달랐고 그 결과 현재 루이스 하인의 아카이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guess00001.jpg »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루이스 하인, 그와 카메라의 그림자가 보인다.  같은 시기의 사회개혁 분야에서는 하인의 성취를 존중했으며 하인의 사진이 아동노동에 반대하는 입법 전쟁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의 사진이 미학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인이 에티컬 컬쳐 스쿨에 개설된 그의 사진강좌를 스티글리츠가 만든 ‘291’모임에다 열긴 했지만 스티글리츠와 하인 사이에는 어떤 교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인은 검프린트, 연초점 렌즈, 자연사진이나 예술적으로 포즈를 취한 누드사진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스티글리츠의 ‘이퀴벌런트’가 하인을 감동시킨 것 같긴 하지만 아무런 영향을 주진 못했다. 하인은 291 모임의 상아탑에 안주하면서 상이나 명예 같은 것을 즐기면서 살 수도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인은 현실을 택했고 억압받는 사람, 굶주린 사람, 무력한 사람들을 위해 뛰어들었다.
 
 어린 시절 본인도 노동을 통해 간신히 학비를 벌었고 마침내 교사가 된 루이스 하인은 어느날 사진에 눈을 뜨고 사진이 훌륭한 교육의 도구란 것을 알게 된 다음 평생 사진에 헌신했다. 여기까진 비슷한 사진가들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사진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그 선택이 달랐다. 루이스 하인이 찍은 사진 덕분에 미국 내 수백만 명의 아동들이 지옥 같은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 하인이 세상을 뜬지 75년이 지났고 지금 한국에도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뭘 할 것인가? 바꿔 표현하면 사진을 찍어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격변의 민주화운동, 노동자운동 시절에는 시위와 집회를 찍고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길바닥 시위의 시대가 아니다. 비정규직과 부익부 빈익빈이 이 시대의 화두이다. 정택용의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기륭전자 비정규직투쟁의 현장을 담고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이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좋은 사례다.
 투쟁의 현장이란 것을 시위대의 집회현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현장이 더 호소력이 있다. 싸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접근이 답이다. 거창하든 소소하든 사진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Walter Rosenblum, America & Lewis Hine; Photographs 1904-1940
 비키 골드버그, 뉴욕타임즈 1998년 9월 13일치 기사, A Career That Moved From Man to Machine
 비키 골드버그, The Power of Photography, ABBEVIllPRESS
 위키피디아(영어판): NCLC, Lewis Hine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사진/미국의회도서관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공정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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