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막장,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곽윤섭 2014. 07. 22
조회수 16497 추천수 1

박병문 개인전 ‘아버지는 광부였다’

이끌리듯 숙명처럼 돌아왔다, 카메라를 들고

찬란했던 과거의 잔흔엔 흑백 상처 고스란히

 

 

박병문의 사진전 <아버지는 광부였다>가 23일부터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에 맞춰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냈다. 개막식에서 박병문(55·사진 왼쪽)씨를 만났다. 그는 광부 연작으로 지난해 ‘최민식 사진상’ 특별부문 대상을 받았는데, 이번 사진전에는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이 대거 포함되어 완성도가 한결 높아졌다. 사진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박 작가의 부친 박원식(85·사진 오른쪽)씨는 1957년부터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30년동안 일한 광부였고, 이날 곱게 한복을 입고 아들의 전시 개막을 지켜봤다. 박 작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다큐멘터리사진가로서 무거운 첫발을 가볍게 내디딘다. 저로서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탄광의 일상이었지만 탄광을 촬영하여 오늘 이곳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이번 사진들 덕분에 탄가루에 묻어 늘 까맣던 아빠의 힘든 얼굴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혀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또 그는 “이 사진전은 오늘도 탄광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광부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사랑하는 저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박원식씨는 아들의 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작년에는 광부들의 현장 사진으로 상을 받았다고 해서 기특하다고 생각했고 동네에 자랑도 하고 다녔다. 사진들을 보니 옛날이 기억나서 흐뭇하기 짝이 없고 ‘아드님’이 잘해줘서 내가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사진들은 탄광에서 고생했던 사람,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park-01.jpg예의”라고 말했다. 탄광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박 작가는 “아버지가 광부였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는 늘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표출하고 싶은 이미지였다. 아버지는 광부들이 캐낸 탄을 실어 나르는 작업을 하고 그러셨는데 사고 난 이야기도 듣고 그랬다. 지금의 젊은층은 탄광을 아예 모른다. 그래서 알리고 싶었다. 예전에 은행 근무를 했는데 첫 발령지가 태백이었다. 탄광을 기록한 지는 15년쯤 되었고 낙동강 사진을 찍다가 만난 이석필 선생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석탄공사 관계자 및 광부들의 협조 문제가 난관이었다. 여러 번 설득해서 윗분들의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탄광에 들어가선 현지에서 일하는 분들과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 (광부들이) 회식할 땐 같이 추렴도 하고 해서 어울렸다. 광부 얼굴의 클로즈업 사진의 경우 리얼리즘적으로 찍었다. 당사자가 ‘내 모습이 나가는 것은 상관없는데 자식들이 보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대화를 많이 나눠서 풀었고 이번 전시에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탄광 외에 다른 작업도 한다. 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지난해 7월부터 찾아가고 있다. 얘기도 하고 동영상도 직접 찍는다. 역시 할머니들과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다. 처음 계기는 나눔의 집 카페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이야길 들었다. 한참 이슈가 될 때였고 매스컴에서 거론될 무렵이었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기에 현장을 찾아갔더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달랐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70%는 기자들인 것 같고 나머지는 유가족들, 정치권 쪽 인사들이더라. 마을 사람이나 시 관계자들은 안 보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성을 많이 띤 것 같아서 싫었다. 5년 지나고 나면 몇 분이나 살아 계실까 싶기도 하고 해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삶의 현장을 휴먼다큐로 담아두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노트를 전체 인용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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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에서 본 숭고한 아버지의 숨결

 

나의 고향 태백, 그 중에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장성은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시절, 탄광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들었던 많은 기억들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석탄 부수러기들이 냇물과 섞여서 거무내(검은 시냇물)가 되어 흐르던 모습, 삼삼오오 모여 출근하고 퇴근하는 광부들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화양연화가 낙화유수로


당시 한국의 어디든, 격랑의 시대를 겪지 않은 곳이 없었겠지만, 태백의 탄광촌은 한층 격렬했다. 찬란했던 거리와 쇠퇴해가던 거리의 모습이 상극을 이루었다. 너도나도 삽을 들고 탄을 푸러 가던 시절. 개가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풍족해진 삶, 뭉칫돈을 들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 도박이나 술로 몰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이 가파르게 승승장구하던 태백은 88올림픽 이후, 휘발유와 경유 등의 수입 확대와 합리화 정책이란 미명아래 광업소가 줄줄이 문 닫고, 석탄의 소비감소와 함께 순식간에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러던 중 태백을 잠시 떠나 있었던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그 때의 기억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귀향길에서 보았던 것은 떠나간 사람들의 발자취 속에 아직 묻어 있는 검은 탄의 모습이었다. 오래전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지기전에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내 숙명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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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간에도 태백의 탄광에서는 소수의 광부들이 남아 얼굴에 탄진을 묻혀가며 지하 천 미터의 수갱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물론 그 수나 양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캄캄한 막장, 거친 숨소리... 어두운 석탄 더미속에서 광부들과 함께 온 몸에 가루를 맞으며 그 치열한 흑백의 기록을 담은 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 지금 하고 있는 내 일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너무도 열악한 어둠속 공간에서 일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사진을 허투루 찍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탄광의 구석구석을 낱낱이 보여 드리고 싶었다. 기억을 오롯이 기록하는것은 사진가에게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위해 고통을 참으며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쳤던 아버지에게 추억의 공간을 선물로 남겨주고 싶었다.

 

 가족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든 아버지를 위해 

 

몇 년의 시간으로는 부족했지만 내가 살던 곳과 아버지가 일했던 탄광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탄광촌 주변의 마을을 밤과 낮 그리고 계절마다 가보았다. 매번 새로운 느낌들로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철암과 장성을 샅샅이 돌면서 알게 된 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비참하고 불운한 상처들도 많았지만.

 

수 많은 삶의 타래들을 풀어 헤치며 기억의 편린들을 흑백으로 담자고 생각했다. 낡았지만 흑백이 주는 따뜻하고도 정겨운 이미지들이 과거의 추억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중 흑백사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 곳은 바로 막장 안이었다. 광부들의 격정적인 움직임, 지치고 피곤한 그들의 얼굴들을 화면 안에 담다보면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긴장되고 숙연해 질 정도였다. 앞이 분간 안 될 정도로 뿌연 분진이 사방에서 흩날리는 막장 안의 느낌들은 흑과 백의 계조로 녹아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사진은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진을 보는 독자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기도 한다.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광부를 찍었다. 동시에 아버지의 인생을 기록했다.

땀이 비오듯 흐르는 40도가 넘는 고열과 숨이 턱턱 막히는 분진으로 촬영하기도 힘든 상황속에서 아버지가 참아왔던 고생의 흔적이 떠올라 눈물을 머금기도 하였다.

 

탄광 작업이 내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사진가로서 무엇을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함을 주었고, 그동안 살아왔던 뒷길을 바라보는 여유를 주었다.

 

비록 미흡하지만 조심스레 탄광의 기록들을 세상에 선보인다.

이 작품들을 탄광촌의 모든 사람들과 오늘도 세상을 향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세상의 장한 아버지들 그리고 소중한 나의 아버지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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