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기록, 기록의 풍경

곽윤섭 2014. 04. 03
조회수 21333 추천수 1

김녕만 40년 사진인생 ‘시대의 기억’

사진가 출신 사진기자에서 다시 사진가로

웃다가 울다가…, 그때 그 순간의 해학들


1-book-HBW-644.jpg » 22~23쪽

 

 김녕만은 1978년 동아일보에 2001년까지 일했던 사진기자다. 김녕만의 사진집 <시대의 기억(Portrait of the Times)>을 소개한다. 이 책엔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1971년부터 2013년까지 찍은 사진들이 수 백장 들어있다. 사진기자를 하기 전에도 사진가였고 사진기자를 그만둔 지금도 사진가다. 300쪽이 넘는 두꺼운 사진집을 꼼꼼히 보니 사진기자로 일했던 시기에도 그는 사진가였다. 사진가와 사진기자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만인이 사진을 찍는 시대이고 매체의 수준에 ‘급’이 없어진 시대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매체기능을 수행하는 것인데 어지간한 신문에 보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보와 교양을 전달한다.

knm02.jpg » 김녕만  사진집도 그런점에서 매체로 기능한다. 소셜미디어와 차이는 무엇인지를 점검하면서 김녕만의 사진집을 이야기해보자. 사진가 김녕만은 1971년 그의 고향인 고창에서 사진을 시작했고 다섯 묶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묶음이 ‘고향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다. 첫 사진부터 강력하다. 후에 동아일보 사진기자가 되지만 초기에 벌써 사진의 틀이 완성되어있었다는 것을 저 수탉과 머리에 인 보자기와 신작로와 흙먼지가 입증하고 있다. 뉴스사진의 분류에서 보자면 서정적인 스케치인 이 사진은 이제 기록사진이 되어 시대의 사료로 남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늘 내가 머물렀던 곳의 사진을 실시간에 전달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사진집은 오래전 사진가가 밟고 있던 땅의 기억을 몇 십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전달한다. 소셜미디어는 빠르고 사진집은 느리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과거의 사진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오늘 이 시간의 ‘담벼락’만 쳐다보게 된다. 책꽂이에 꽂아놓은, 그보다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사진집에선 40년 전을 금방 검색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뭔가를 보기 위해서도 손가락을 쓰고 사진집을 보기 위해서도 손가락만 쓰면 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스마트기기의 차갑고 매끄러운 질감으로는 과거의 추억을 더듬어내는데 취약하다는데 있다. 어찌 손에 와닿는 촉감에 비하겠는가. 이 글을 쓰다가 반복하겠지만 “제발 사진집 좀 보는 풍토가 확산되면 좋겠다.” (모든 이들의)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풍속도가 때론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때론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 무렵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김녕만이 “새마을운동을 기록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고 밝히고 있듯이 (공과를 따질 일 없이)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가감없이 기록되어있다.
 knm14.jpg » 시대의 기억 표지.
 두 번째 묶음은 ‘서울’이다. 사진가가 서울로 왔으니 사진도 서울로 왔다. 1990년대와 80년대와 70년대가 시간 순서없이 서울을 보여준다. ‘88올림픽 호돌이’가 산동네 빨랫줄에 매달려있고 서울역 앞에선 보따리가 광장에 놓여있다. 서울로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 철거를 하고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골목엔 아이들이, 남대문시장엔 어른들이 정신없이 놀고 일한다. 글로 사진을 묘사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러니 “제발 사진집 좀 보는 풍토가 확산되어야 한다.”
 
 책의 나머지 묶음은 ‘민주화로 가는길’, ‘대통령’, ‘통일을 향하여’로 구성되었다. 사진기자가 된 사진가 김녕만은 날개를 달고 시대를 날아다녔다. 작가노트에서 “일반 사진가라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에 사진기자이기 때문에 접근할 수 있었던 특권에 감사한다. 그 특권을 소홀히 하지 않고자 스스로 독려했다”라고 밝힌 김녕만은 이 묶음에서 광주민주화운동부터 전두환, 노태우가 12.12와 5.18사건 재판을 받기위해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까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사이에 거리시위와 이를 막는 전경들의 ‘전투’ 장면이 수없이 들어있다. 김녕만은 이 무거운 사진들을 펼치면서도 또다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전경들의 고단함도 빼놓지 않고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편에선 윤보선부터 박근혜대통령까지 파노라마처럼 등장한다. ‘통일을 향하여’편은 김녕만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판문점출입기자시절의 기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북의 대치는 세계인의 관심이며 현재 한국인의 오늘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묶음에 배치한 것은 연대기에 따른 순서이기도 하지만 40년 사진가 생활을 정리한 이 책으로선 당연한 귀결이다. 앞의 모든 사진들이 ‘통일을 향하여’ 묶음의 하부 장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knm03.jpg » 38쪽

knm04.jpg » 47쪽

knm05.jpg » 48쪽

knm06.jpg » 60쪽

knm07.jpg » 136쪽

knm08.jpg » 156쪽

knm09.jpg » 177쪽

knm10.jpg » 222쪽

knm11.jpg » 247쪽

knm12.jpg » 255쪽

knm13.jpg » 311쪽

           
 
 얼마전에 막을 내린 ‘한국보도사진전 50주년 특별전’에 김녕만의 코너가 있었다. 그때 한 쪽 공간에 김녕만의 기자증, 출입증 등이 잔뜩 있었다. 빛바랜 기자증만으로도 한 사진가의 사진인생이 전달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사진집은 당연히 몇 배 이상의 위력으로 사진가 김녕만을 알려준다. 김녕만은 동아일보에 들어가기 전인 1975년에 이미 ‘눈 내리는 시골마을의 우체부 포토스토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만약 그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래서 보도사진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해 연작이 아닌 낱사진만 사용한 한국의 매체가 아닌 다른 나라의 매체에서 사진기자를 했다면 세계적인 스토리텔러가 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사진집 ‘시대의 기억’을 펼치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목격한 취재현장의 김녕만은 늘 유머감각이 뛰어난 선배였고 그의 사진은 그의 웃음만큼 해학이 넘친다.
                                                                                                                   책구입바로가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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