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동창생’ 향수, 추억 속으로 던지고 치다

곽윤섭 2012. 10. 26
조회수 10188 추천수 0

박준수 사진전 ‘동대문운동장’

환호성과 탄식,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

그리움이 때론 직구로, 때론 변화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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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의 역 이름 중에서 ‘동대문운동장역’이 있었다. 이제는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그 역의 이름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장소를 규정하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력하게 작용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면 그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지금 내 눈앞에 없다면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없는 것이다. 2012년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가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책 한권이 나왔다. 책은 사진과 글이 같이 실려 있는데 사진의 비중이 조금 더 커 보이지만 비중은 물리적인 공간의 평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책의 저자는 두 명으로 “김은식이 쓰고 박준수가 찍다”라고 되어있으니 비중이 비슷하다고 본인들이 판단한 모양이다.

 

사진을 보고 보도자료를 봤다.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기억은 그 시절 고교야구에 열렬히 반응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틋하게 남아있다.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나온 곽 기자도 야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동대문운동장에 모교의 야구부가 등장한다는 것은 관중석에는 그 학교의 졸업생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프로야구 관중들은 발랄하다. 그런데 동대문운동장의 졸업생 관중들은 대체로 퇴근 후의 아저씨팬들이다. 그림이 선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그러니 이 책과 이 책에 실린 사진이 낯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래는 보도자료의 일부와 책 본문의 일부다.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팀이 처음 공놀이를 했던 서울 동쪽의 넓은 들판 ‘성동원두(城東原頭)’, 그 터에1925년 경성운동장이 개장됐다. 그리고 그곳은 서울운동장으로,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으로 변해가며, 고교야구의 메카, 프로야구 출범의 시작점이 되었다. 1980년대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은 만원사례를 이룰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던, 한때 학생야구의 메카였던 그곳. 그곳엔 변변치 않은 오락거리로 삶의 노곤함을 달래던 보통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상념들이 같이 존재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곳을 감히 ‘문화유산’이라고도 칭하는데, 결코 과장된 단어가 아니다. 1925년부터 철거가 완료된 2008년까지 그 오랜 시간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슬퍼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던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6년 동대문운동장은 시설을 전면적으로 철거⋅재개발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2007년부터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한 조각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2008년 그 존재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아련한 장소가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를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그 당시를 설명하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그곳의 가치를 알아야 할 후대의 사람들에게조차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추억 속에나 남아있을 법한 그때 야구의 기억을 넘어서 ‘당대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동대문운동장’. 그런 의미로 시작된 사진과 기록의 정리는 한 권의 책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동대문운동장을 되새길 수 있다면, 아니면 그립거나 기억하고 싶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그곳의 사진과 글은 감동을 준다.

 

박준수 사진작가는 2007년 철거를 앞두고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비롯하여 그곳의 곳곳을 기록했고, 김은식 작가는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정리했다.

  

 

나는 동대문야구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세 가지 ‘냄새’를 떠올린다. 지린내. 알콜내. 땀내.

여름이든 가을이든, 혹은 낮이든 밤이든 동대문야구장의 풍경은 한결같았다. 한 구석의 호젓한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지린내가 풍겼고, 그곳을 피해 옮기다보면 언제나 ‘난닝구’ 바람에 소주냄새를 풍기는 아저씨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 어느 구석쯤에 신문지를 깔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보면 빼곡히 들어차 끼어 앉은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큼한 땀 냄새를book001.jpg 품고 있었고, 이럴 줄 알면서 왜 또 여길 왔을까 후회하는 마음에 짜증이 오르기도 했었다.

-p 29

 

동대문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야구장과, 시장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우뚝 솟은 웅장한 야구장을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싼 청계천을 따라 전태일이 피와 땀과 눈물과, 독한 불길에 새까맣게 그을려버린 살까지 묻은 피복상가가 있었고, 헌책방이 있었고, ‘만물시장’이라고도 불리고 ‘벼룩시장’이라고도 불리던 황학동의 난장판이 있었고, 또 비싸지 않은 옷과 책과 잡동사니를 찾아 기웃거리는 길손들을 잡기 위해 무언가를 굽고 끓이고 얼리고 뒤섞는 구멍가게와 노점상들이 있었다. 물론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정치깡패 이정재의 본거지였던 시절 거칠고 야비한 전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청계천 건너 남대문 시장과 팽팽한 경쟁관계를 이어가며 아동복과 전자제품과 보세물건들이 세대교체를 해 온 야사(野史)들의 현장이기도 했다.

-p 118 

 

불 꺼진 조명탑은 늘 처연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시간, 초저녁부터 밀려들던 어둠을 야구장 담장 밖으로 밀어내던 조명탑에서마저 불이 내려지고, 그래서 푸릇한 밤하늘 속으로 순진하게 큰 덩치의 구조물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윤곽만이 어른거릴 때, 바로 이삼십 분 전까지도 하얗게 불타오르던 격정과 함성과 탄성과 눈물들이 순식간에 몇 해 전의 아득한 시간 속으로 밀려났다가 돌아오는 듯 새록새록 되새겨지곤 하기 때문이다.

-p 176


   

책의 사진을 찍은 사진가 박준수의 사진전 ‘동대문운동장’은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palais de seoul) 지하1층에서 열린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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