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눈높이에서-1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초보사진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꽤 오랫동안 사진을 찍은 사진가들에게도 이런 고민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자체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앞 시간에 말씀드린 방법들과 병행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눈높이를 바꿔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키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1미터보다 더 작은 경우도 있고 농구 선수들처럼 2미터보다 더 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1미터와 2미터사이입니다. 사람들의 키가 일생동안 꾸준히 커 가는 것이 아니란 점도 중요합니다. 대체로 20살을 전후해서 성장이 멈추고 그후론 평생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주 접하는 대상을 볼 때 늘 비슷한 높이에서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네 입구의 전봇대, 가로수, 마을버스, 사무실의 입구, 엘리베이터의 문까지 매일 보던 곳을 또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전단지, 과외를 원한다는 광고, 운전면허학원의 쪽지광고, 버스의 번호, 엘리베이터의 ‘기대지마시오’나 그 옆의 낙서 `장풍금지‘까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붙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기대지마시오’나 광고판은 조금 높은 곳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른 사람들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내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과 시설은 나의 눈높이와 손높이 근처에 몰려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봅시다. 거리든, 공원이든, 어디를 바라볼때도 이 눈높이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러므로 늘 보던 것엔 둔감하고 새로움을 느끼질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여러분들이 알 것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눈높이에 변화를 주라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높여도 보고 낮춰도 봅니다. “하늘에서 본 지구”란 사진집과 사진전시회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환경훼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공을 들여 찍은 사진들이라 책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사진들이 크게 주목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앵글로 찍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소재들 중에는 1미터와 2미터 사이의 높이에서 봤다면 큰 감흥이 없었을 대상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날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벽에 부딪힌 듯 느껴질 때 우리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그런 높은 앵글의 사진을 따라해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평소와 다른 눈높이로 보면 못보던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때 광고에도 빈번히 등장했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은 사진찍기에도 유효합니다. 손쉽게 생각해 이제 막 일어서서 걷는 꼬마들의 눈높이로 찍은 사진과 어른들의 눈높이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봅시다. 어른들의 높이에선 그 꼬마들의 세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꼬마에겐 책상밑도 보이고 식탁밑도 보입니다. 텔레비전도 자기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게 배치된 온갖 살림살이들은 모두 저 높은 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편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기엔 시간이 많이 들고 비용도 많이 들 것입니다. 대신 “한 살 꼬마 눈높이에서 본 우리동네”란 주제로 사진을 구성해보십시오. 평소에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놀이터에서, 학교와 집에서도 평소와 다른 앵글을 찾아봅시다. 2층 카페의 창문, 학교 운동장의 정글짐꼭대기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높은 장소입니다.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놓치지 않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고양이나 강아지와 자주 마주친다면 그들 또한 좋은 소재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이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는다면 이들의 등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만약 우리보다 키가 열두 배 큰 거인 걸리버가 자신의 눈높이에서 우리들을 찍는다면 어떤 사진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므로 고양이나 강아지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선택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빌딩 위에서 본 풍경- 평범한 곳도 특별한 눈높이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면서 멋진 사진거리가 된다. 63빌딩이 유리창을 닦는 사람들 뒤로 보이는 도로가 이색적이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거의 바닥에 닿을 듯 카메라를 내려놓고 찍었다.
바닥에서 본 사무실 전경. 평소 눈여겨 보지 않던 휴지통도 보이고 의자의 바퀴도 이색적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