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초의 운명, 사진기자의 굴욕

곽윤섭 2012. 02. 15
조회수 15263 추천수 1

  [사진 뒤집어보기]

 몇 시간 공들이고도 순간 물먹거나 멍 때리거나
 잠깐 방심하다 보면 꼭 그럴 때 찍혀 대략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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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기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다가 “저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자주 생각했다.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므로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략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신문기자 외에 방송, 온라인매체, 1인 미디어들도 같이 움직인다. 검찰청사나 경찰서에 누군가가 출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정지된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와 동영상을 찍는 방송사 촬영기자, 블로거들이 대거 포진해 대체로 줄을 서서 찍는다.

  녹음기나 마이크, 스마트폰 같은 것으로 인터뷰를 따려는 사회부 기자들은 영상을 찍는 기자들과 취재원 사이를 가로막지 않는 동선 안에서 가능한 취재원 가까이 다가서려고 한다. 모든 기자들과 취재원들이 포토라인을 잘 지키기만 하면 모양 좋게 상황이 마무리될 수 있지만 현실은 늘 녹록하지 않다. 취재원이 맘대로 정해진 반경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아수라장이 된다. 조금 멀리서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관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가창오리떼의 군무 정도다. 수시로 형태를 바꾸면서 몰려다닌다. 가끔 한두 마리가 대열에서 낙오하지만 어느새 따라붙는 것을 보면 똑같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현장

 

 영화에서 특히 사진기자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느 회사의 사진기인지, 렌즈는 제대로 달고 있는지, 플래시는 어떻게 터뜨리는지, 사진기를 잡는 법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등 별별 것을 다 꼼꼼히 본다. 1~2초의 짧은 순간 쑥 지나가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옥의 티는 속속 드러난다. 마치 곡예라도 하듯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사진기를 잡는 사진기자(역할을 하는 연기자)도 있고 어디서 구했는지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골동품 사진기도 등장한다. 감독이나 PD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막막 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은 없다. 기자가 아닌 보통 관객이 볼 땐 모르고 넘어가겠거니 생각한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에서 엑스트라나 배경 정도로 나오는 기자들의 경우 현실과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뭐냐 하면 화면 속의 기자들은 아주 열심히 취재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사진기를 잡는 파지법은 어색하지만 절대 한 눈 팔지 않고 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계속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가 터진다. 볼펜을 든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수첩에서 손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 아마도 드라마를 찍을 때 현장감독이 연기자들에게 그렇게 시켰을 것이다.

  자, 그럼 현실의 기자들은 어떨까? 오늘 소개하는 신문사진을 보면 현장의 기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선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기자들이 많다. 사진기자는 사진기를 얼굴에 대고 있으면 맘 편하고 볼펜을 든 기자들은 수첩과 혼연일체가 되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실제론 그러질 못하고 수시로 멍 때리는 표정이 나온다. 특히 복잡한 취재현장이라면 360도 방향에서 사진기와 ENG가 돌아가므로 기자들은 엉뚱하게 찍히기 십상이다. 한쪽에서만 렌즈를 들이대면 피할 각도가 생길 터인데 동서남북이 따로 없을 땐 어느 한 앵글도 피난처가 없다.

 

 볼펜 든 기자들은 특히 표정관리 잘 해야

 

  특히 볼펜을 든 기자들은 표정관리를 정말 잘해야 한다. 거울을 보면서 수시로 연습을 할 것을 권한다. 우아하고 숙련된 자세로 필기를 하는 척하는 법을 익혀두면 언제 어떤 각도에서 찍히든  민완기자처럼 보일 수 있다. 사진기자들도 사실 예외는 아니다. 잠깐 방심하다 보면 다른 사진기자의 렌즈에 걸려든다. 운 나쁘면 하품하다가, 코를 풀다가, 딴 데 쳐다보다가 1/250초의 찰나에 포착된다. 그 장면을 찍는 사진기자들이 그걸 노리고 찍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런 불편한 배경과 구성요소가 사진에 등장하면 뉴스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워낙 순식간에 굴욕 장면이 형성되면 어쩔 수 없다. 필자도 여러 번 그런 경우를 당했다. 특히 방송사의 ENG에 찍혀서 뉴스시간에 불쑥 나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등장했다. 껌을 씹거나(입에 껌이 없는데도!) 코를 파는(실제로는 잠깐 간지러워 코끝을 만졌는데도) 상태로 쑥 지나가는데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한 두 번 당한 뒤로는 요령이 생겨 현장에서 다른 사진기나 ENG가 있을 땐 꼭 내 사진기를 얼굴에서 떼지 않으려고 했지만 잠깐 방심하면 꼭 그때 찍힌다.
 
 정말 민망한 순간도 있다. 현장을 서너 시간 지키면서 수 백번 셔터를 누를 일이 있다. 언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집회에선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서너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담아두었다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나타나는 그날의 최고 장면을 놓쳐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너 시간의 노고는 1/250초 만에 물거품이 된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물 먹는 일은 늘 있을 수 있다.

 민망하다고 한 것은 그런 찰나의 순간에 사진기를 내려놓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장면이 다른 사진기에 찍히는 경우다. 특히 열 댓 명의 사진기자들이 모두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혼자 그 순간을 맨눈으로 보는 장면이 경쟁지의 사진에 등장하면 대략 낭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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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4일치의 각 신문에 실린 이 사진들은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을 찾아와 헌화, 연주, 기도하고 사죄를 한 일본인 목사의 이야길 담고 있다. 사진의 구성에서 보자면 목사와 위안부 소녀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나머지는 모두 큰 역할 없는 조연 혹은 배경이다. 지금 사진에서 목사와 소녀상 외의 다른 요소, 즉 기자들은 없어도 좋다. 제대로 말하면 기자들은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글이든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기자는 현장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는 사람일 뿐 현장에 개입하는 사람은 아니다. 기자가 사진 속에 찍혀 뉴스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른 사진기자가 날 향해 찍고 있으면 피해주는 것이 좋겠다. 입장을 바꿔 말하자면 내가 찍을 때 다른 기자들을 찍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장소가 좁고 기자가 많아서 피할 곳이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영화 속 사진기자들처럼 사진기로 얼굴을 가리거나 표정관리를 하면 좋겠다. (사진뉴스의 내용이 기자회견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자회견은 기자들과 누군가의 대응이니 사진 속에 기자가 등장하는 것이 맞다.)
  크든 작든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거리의 기자는 고달프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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