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희 ‘사진과 책’
14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비밀 코드
암호의 비밀번호는 사랑, 안목이 열려 » 저자 박태희
사진공부에 도움이 되는 강력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박태희가 쓴 <사진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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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도 어떤 대학교의 학보사 기자들에게 사진강의를 하고 왔다. 두 시간 예정이었는데 하다 보니 한 시간 정도 길어졌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학보사의 기자들이니 주로 뉴스와 관련된 보도사진이야기를 했는데 세 시간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짧은지…
‘저널리즘 포토’가 아닌 그냥 사진에 대한 강의를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7년째 진행하고 있다. 15주짜리도 있었고 10주에 마치는 강의도 있다. 매주 두 시간이니 10주면 스무 시간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진 않아도 좀 할 만하다. 대학교의 한 학기는 16주다. 실습을 빼면 매주 당 이론이 세 시간씩이니 마흔여덟 시간쯤 된다. 이 정도라면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다. 기초부터 포토스토리까지 모두 이야기한다.
왜 이런 이야길 하느냐면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지, 그리고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말을 하려고 그런다. 특히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가급적 빨리 쉽게 배우려고 하는데 그 참 난감하다. 타고난 천재성이 있는 분이라면 쉽고도 빨리 사진을 깨칠 수도 있는데 그런 인재는 드물다. 그리고 사진에선 천재성이란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름지기 사진은 시간과 빛의 합작이니 오래될수록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을 요즘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소 10주 정도는 배우시라고 권유해오고 있다.
알고 보면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진마을에 소개한 생활사진가들을 보면 대부분이 혼자 익혔다고 한다. 이론서를 안 본 사람도 있다. 사진기 매뉴얼만 읽고 나서 많이 찍어보다가 어느 순간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이는 없다. 내가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사진. 독학해도 좋다. 전설적인 듀엣 기타리스트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는 브라질 북부의 정글에 살던 타바하라 인디언 족장의 아들들이었는데 어느 날 정글에서 주워온 기타를 가지고 독학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도 없고 악보조차도 없이! (생각난 김에 유투브에서 타바하라스의 마리아 엘레냐를 들어보시라)
배울 필요 없이 혼자서도 가능한 장르가 또 있다면 바로 그게 사진이다. 어떤 사진기든 한 30분 붙들고 켜보고 배터리와 메모리카드 넣어보고 셔터와 옆으로 된 삼각형 눌러보면 금방 배울 수 있다. 답답하면 사용설명서 참고하면 풀린다. 그렇게 독학한 사람들이 사진 정말 멋들어지게 찍는 사례를 자주 봤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독학하더라도 사진집을 많이 봤다는 사실이다. 그럼 그렇지! 훌륭한 사진집을 100권 정도, 권당 100번씩 보고 나면 사진을 못 찍을 수가 없다. (맹목적으로 따라하진 마시라.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사진책을 본다면 소용없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집을 소개해주면 될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추천해 드릴 수 있다. 해당 당사자와 대화해보고 성향과 입문 정도에 따라 추천한다. 이메일 보내시라. (kwak1027@hani.co.kr) 어떤 이는 이메일 보내라고 했더니 그냥 읊으라고 했다. 허…. 만인을 위한 책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만 맞는 책도 있는데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모든 책들을 다 권할까. 이럴 때도 난처하다. 그 사람들은 급하다 보니 사진집 리스트 열 권을 주면 다 사놓고 바로 공부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글쎄…. 그렇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사진집을 구워먹든 삶아 먹든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소개하라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우선 최종규씨가 낸 <사진책과 함께 살기>가 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그런 점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책이다. 사진집을 줄줄 소개하고 있다. 찾아볼 것을 권한다. 이번에 또 하나의 사진집 소개책이 나왔다. 박태희씨가 <사진과 책>을 냈다. <사진강의노트>를 번역했고 사진집 <사막의 꽃>을 냈던 박태희씨는 사진가이며 출판인이며 사진강의도 하고 있다. 그러니 사진책을 많이도 봤을 것이다. 그런 내공의 깊은 원천이 된 열네 권의 사진책을 소개한 책이 <사진과 책>이다. 어디 열네 권밖에 없을까? 아마도 꼬불쳐놓은 책이 더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또 풀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열네 권을 선정한 것은 전적으로 박태희씨 본인이다. <사진과 책>은 사진집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다. 목록의 1번은 사진계의 툴루즈 로트렉이란 별명으로 불린다는 벨로크의 <벨로크>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조지아 오키프>,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 존 자코우스키의 <사진가의 눈>등이 포함되어있다. <브랏사이>, <활주로>, <삶의 끈끈이 종이>등도 눈에 들어온다. » 표지
여기 나온 열네 권을 아우르는 어떤 기준이나 공통점을 찾아볼까 싶었지만 그런 접근보다는 저자 박태희씨가 아끼는 사진집들이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진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정도 사진집을 꿰고 있으면 “한 사진 한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여기 나온 책의 다수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적이 없는 책이므로 온라인서점에서 해외주문을 해야 한다는 점과 절판된 책은 중고시장에서 조금 비싸게 거래된다는 점이 맘에 걸리긴 하지만 사진을 독학으로 배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갖고 싶었던 책 한 권을 주문해두고 한 열흘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박태희의 책 <사진과 책>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문장은 역시 박태희 본인의 글이다. 서문에서 옮겨왔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 사진공부란 사진책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사진책을 펼치면 꿈속을 걷듯이 현재의 공간과 시간을 벗어난 완전히 다른 세계가 전개되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진책을 만나는 경우는 살면서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는 딱 고만큼의 확률로 찾아들었다. 담벼락 뒤에 숨어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처럼 나는 이런 사진책을 곁에 두고 밀애의 감정에 젖어들곤 했다”
연애편지를 읽는 것 같다. 박태희씨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진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인간성을 공유하려 했고, 도처에서 펼쳐진 켜켜한 삶의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묵상했다. 창조적인 독자는 사진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감정의 변화들 속에서 고민하고 성장한다”
확실하다. 여기 소개하는 사진집 열네 권은 사진공부에 도움이 된다. 이어진다.
“진정한 사진은 우리의 시선을 넓고 깊게 만들어 지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하는데 등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진을 독학으로 배우는 사람들은 우선 박태희의 <사진과 책>을 사서보고 열네 권이 어떤 책들인지 감을 잡은 다음에 열 네 권 중에 필요한 책을 한두 권씩 보기 시작하시라. 만약 여기 있는 열 네 권을 모두 보고 나서도 사진이 늘지 않았다 하더라도 뭐 어떨까 싶다. 그만큼 당신의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안목은 넓어질 것이다. 그게 사진실력 느는 것보다 더 좋지 않겠는가.
<사진과 책> 67쪽. 원 사진집 존 자코우스키 <사진가의 눈>중에서
<사진과 책> 84쪽과 85쪽. 원 사진집 낸 골딘 <악마들의 놀이터>에서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