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거리의 삶에 제2의 몸으로 스민 ‘사진교과서’

곽윤섭 2012. 01. 10
조회수 19734 추천수 0
   윌리 로니스 마지막 사진집 ‘그날들’
 복잡한 풍경 깔끔하게…컬러같은 흑백 백미
 사진 1장에 글 한 쪽, ‘글로 찍은 사진’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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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잘 찍고 싶은데 뭐부터 시작할까요?”라고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좋은 사진집을 여러 번 보세요”
두 군데 방점이 있다. ‘좋은’이란 표현과 ‘여러 번’이란 표현이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고 했으니 여러 번 보는 것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집은….
 5권 정도는 선뜻 권할 수 있지만 더 깊은 수준을 원한다면 그 사람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대화를 먼저 해봐야 추천해줄 수 있다. 대화라고 하면 또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은 그냥 막무가내로 사진집 이름만 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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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런 분들에게 맘 놓고 권할 수 있는 책이 있다. 이 사진집은 초보, 경력,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도움이 된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번져나오는 사진들이 들어있다. 윌리 로니스의 마지막 사진집 ‘그날들’을 소개한다. 윌리 로니스는 브라사이(1899~1984),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1908~2004), 드와노(1912~1994), 로버트 카파(1913~1954) 등과 같은 시절에 파리를 찍기 시작했던 사람으로 파리를 대표하는 사진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동시대의 거장들이 모두 파리를 기록하긴 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도 활동했던 것에 반해 로니스는 주로 파리에 머물렀고 다른 누구보다도 더 오랜 세월, 고쳐 말해 20세기 내내 파리를 기록했다. 라포에서 일을 했고 라이프를 위해서도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신문사진가로서도 활동한 셈이지만 로니스  사진의 진면목은 스스로 말했듯 ‘거리의 사진’들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내 삶의 작은 기적’들을 사진으로 옮겼다. 

 

 특별한 볼거리나 특이한 명소 찾는 사진가들에게 일침

 

 로니스의 이번 책은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하다. ‘그날들’ 책 65쪽의 사진을 예로 들어보겠다.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빨랫줄이 화면을 아무렇게나 토막 내고 있고 전혀 적절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빨래가 펄렁거리고 있다. 벽돌로 포장된 바닥은 질서없이 교차하고 있다. 다섯 중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인물은 보라는 듯 (삼분할 구도와 상관없이) 한가운데 있고 특히 머리에 쓴 레이스모자가 핵심점이다. 네덜란드 전통의상이 이 사진의 감흥을 높였고 오른쪽 위에서 할머니에게 이끌려가는 꼬마의 엉거주춤한 걸음과 왼쪽 소녀 발의 움직임이 사진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사진을 로니스는 전혀 복잡하지 않게, 잘도 찍어냈다.
 
 로니스는 “아주 드물게 요소를 많이 포함한” 사진을 자주 찍었다. 컬러보다 흑백이 단순하기 때문에 흑백을 선호하는 사진가가 많은 것처럼 하나의 사진 안에 여러 요소를 포함해서 성공적으로 깔끔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감의 발로이며 어떤 대상을 찍기에 앞서 아주 세심한 관찰을 했다는 증거다. 그는 사진을 위한 어떤 요구나 미장센도 없이 작업을 했다. 사진에서 미장센이란 ‘연출’이란 뜻이다. 로니스는 “나는 특별하고 특이한 것을 좇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을 기록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진을 위해 특별한 볼거리나 특이한 명소를 찾아다니는 사진가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가 기록했던 일상적인 파리 사람들의 골목길 풍경엔 그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 들어 있다. 그가 그 시절에 마주친 파리의 골목은 영원히 사진 속에서 빛난다. 비록 로니스는 1951년에 찍은 그 거리를 80년에도 찍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그가 마주쳤던 일상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리다. 왜냐하면 거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 21 제642호 2007년 1월 5일. 필자의 글에서 부분 인용. 전문-> 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7/01/021015000200701050642061.html

 

 사람은 꼭…“나를 숨기지 않지만, 또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이번에 나온 책 ‘그날들’에서 사진공부에 도움이 되는 사례는 아주 많다. 그 중 한 가지를  더 소개한다. 56쪽. 흑백처럼 보이는 컬러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눈이 내리는 날이나 안개가 낀 날, 혹은 조명이 열악한 그늘 속에서 컬러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흑백처럼 보인다. 그런 화면 속에서 아주 작지만 빨갛거나 노랗거나 파란, 어떤 요소가 끼어있으면 정말 매력적인 ‘흑백 같은 컬러사진’이 되는 것이다. 필자도 그런 사진을 지금껏 살면서 한 두 장은 찍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컬러처럼 보이는 흑백사진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또 처음 봤다.

 자고로 봄이란 것은 모호한 계절이긴 하다. 춥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낮엔 잠깐 땀이 나기도 하는 어느 봄 날, 문득 먼 산을 보면 여러 계조의 녹색이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날 산에서 보이는 녹색의 첫 단계는 하얀색 혹은 회색이다. 그 무채색에 아주 조금씩 녹색계통의 물감을 흘리면 농도와 빛의 각도에 따라 옅은 녹색, 봄녹색, 연두색, 중봄녹색, 밝은 녹색, 숲녹색 등의 여러 녹색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니스의 사진에 등장하는 나뭇잎들에서 필자는 여러 가지 녹색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싱그러운 냄새까지 전해지니 이런 사진은 찍는 훈련을 하면 사진이 부쩍 늘 것이다.

 그러니 사진교과서가 따로 없다. 출판사의 협조로 이 글을 쓰면서 몇 장을 더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모든 사진을 다 보여줄 순 없다. 106, 130, 150쪽 등등 사진공부에 도움이 되는 사진은 그 외에도 부지기수다. 혹시 책을 사서 보다가 몇 쪽의 어떤 사진이 왜 사진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댓글을 다시기 바란다. 바로 답해드릴 수 있다.

  

 윌리 로니스의 사진에서 사람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춤을 추든 길을 가든지 꼭 사람이 있다. (아주 약간의 예외가 있어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고양이가 있거나 자동차가 있는 사진은 있다) 사람을 찍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파리에서 꼬박 70년 가까이 사진을 찍은 로니스에게도 같은 문제가 있었을까? 윌리 로니스는 세상을 뜨기 전에 했던 프랑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삶에 움직인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를 좋아한다. 나는 나를 숨기지 않지만, 또 아무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삶, 사람, 사람이 있는 거리를 찍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숨기면서 도촬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카메라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쉽지 않다. 예의 있게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티 나지 않게 접근하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제2의 몸…“카메라는 나를, 나는 카메라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

 

이 사진집은 다른 점이 있다. 유난히 글의 분량이 많다. 흔히들 말하는 ‘포토에세이’의 형식은 아니다. 한 장의 사진에 한쪽 내지 두 쪽의 글이 붙는데 그 글은 사진을 찍었던 순간과 상황과 느낌에 대한 설명이다. 이 또한 공부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사진가를 이해하는데도 요긴하다. 흔히들 글이 많으면 사진의 가치가 위축될까 염려하고 필자도 그런 점에서 책을 펴들기가 불안했지만 네댓 쪽을 넘기면서 그런 우려는 몸에 달라붙으며 끈적거리던 습기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사라지듯 없어졌다.

 로니스는 사진에 대한 작가노트를 쓴 것이 아니고 글로 또 다른 형태의 사진을 그려냈다. 어느 시점에선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림으로 돌아가 버린 브레송과 달리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평생사진가 로니스에게 카메라는 몸의 일부이자 동반자였다. 책에 두 가지 고백이 나온다. 카메라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절대 내 카메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절절한 애정고백이다.

 
 “나는 세 번을 날았다. 물론 카메라를 가지고 탔다. 카메라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는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이 도약의 시간에도 나와 떨어질 이유는 없다.” (책 42쪽에서)
“그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는 이 두 사람의 등을 보았다. 나는 내 카메라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 (책 89쪽에서)  
 

 

  윌리 로니스(1910~2009)


 프랑스 파리. 어렸을 때 로니스의 아버지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사진관 일을 거들게 된다. 그때부터 파리 곳곳을 찍기 시작. 1936년에 스튜디오 문을 닫고 브라사이, 로베르 드와노와 함께 라포(사진 에이전시)에 합류. 1953년에 당시 MoMA(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 디렉터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조직한 전시 “다섯 명의 프랑스 사진가전”에 참여. 다섯 회원은 로니스, 브레송, 드와노, 이지스, 브라사이. 1955년 스타이켄 일생일대의 기획전시 ‘인간가족’ 전에도 참여. 로니스는 2001년 그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파리에서 파리를 찍었다.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파리시에서 대규모 회고전 ‘파리의 윌리 로니스’을 헌정했고 50만 명이 넘게 전시를 관람했다.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파리 회고전의 일부가 한국으로 건너왔고 두 달간 서울서 전시되었다. 2008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세기를 통째로 살고, 온전히 경험하고, 그 전부를 기록했던 그는 2009년 9월 11일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책 서평을 쓰려고 출판사에 전화해 책 한 권과 보도자료를 받았다. 짐작했던 것 만큼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냉큼 세 권을 더 샀다. 책이 오늘 오후에 왔다. 좋은 책은 사서 봐야 한다. 세 권은 올해 사진마을에서 이벤트를 하게 되면 회원들에게 선물로 드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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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입은 이곳으로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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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울에서 열린 윌리 로니스의 전시장에서 도슨트와 한 컷.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 속에서 필자는 늘 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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