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로 담은 달동네 골목길 인기척

곽윤섭 2011. 11. 14
조회수 11519 추천수 0

   건축사진가 김재경 <mute 2: 봉인된 시간 Sealde Times>
   오밀조밀 모퉁이마다 밴 ‘사람 없는 사람 풍경’
 두 배로 넓은 가로 폭 덕에 상상도 두 배 이상

 

신당5동-090911(7-8.jpg

김재경 신당5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사진은 네모다. 최초에 사진을 발명한 사진의 아버지들이 네모형태로 만들었다. 네모 중에는 정사각형, 직사각형, 마름모꼴이 있다. 사진은 네 귀퉁이가 직각인 사각형이다. 니엡스와 다게르가 발표한 사진의 비율은 대략 3:2에 가까운,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다. 현재 카메라를 생산하는 업체들중에선 SLR(필름이든 디지털이든)이라면 3:2 비율의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4:3짜리 카메라도 있고 1:1 비율의 정사각형 형태도 있다. 동그란 사진은 앨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카메라의 프레임이 동그랗게 생긴 것을 본 적이 없다. 렌즈는 둥근데 왜 사진은 네모난 형태인지 갑자기 궁금해지지만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샐까봐 이정도에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건축사진가로 유명한 김재경씨의 사진전 <mute 2: 봉인된 시간 Sealde Times>가 한미사진미술관 20층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의 7인 연속기획전 SPECTRUM 중 두 번째 것으로 앞으로 다섯 작가의 전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엔 45점의 파노라마 사진이 걸린다. 중요한 것은 사진이며 카메라가 아니란 주장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곽기자이긴 하지만 파노라마는 잠깐 언급하고 들어가야겠다. 언급 정도가 아니라 이 전시에서 사진의 판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것을 생각하면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시작하는 분들이 왕왕 저에게 묻는다. 사진을 트리밍해도 좋은지. 트리밍하시고 싶으면 하시라고 한다. 또 묻는다. 트리밍할 때 원래의 비율을 지켜야하는지. 가급적 그렇게 하시라고 한다. 3:2, 4:3 혹은 1:1의 가로 세로 비율은 사진가의 선택이다. 미술시간에 그리기를 할 때 본인이 선택한 도화지의 비율이다. 각각의 비율이 다르다. 같은 풍경을 찍더라도 비율에 따라 담기는 내용이 달라지므로 각각의 비율은 모두 존중할 일이다.

만약 1:1로 자른 사진이나 4:3, 3:2로 자른 사진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그건 아주 정교하지 못하게 찍은 사진이거나 내용에 큰 의미가 없는 사진이다. 원래 3:2 짜리 카메라로 찍었다면 3:2에서 최적의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간혹 1:1 짜리 카메라를 없어서 3:2 카메라로 찍은 뒤, 1:1로 트리밍하는 경우가 있다. 찍을 때부터 트리밍을 예상했다는 이야기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김재경의 이번 전시는 모두 파노라마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이런 판형의 도화지를 택했을 것이고 감상의 포인트도 여기서 시작된다. 가장 흔한 3:2 짜리 사진과 비교하면 가로의 비율이 두 배이상이다. 환산해보니 대략 5.4:2의 비율이 나온다.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이다. 그 덕분에 여러 가지 잇점이 생겼고 김재경의 사진은 그 잇점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다. 구성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사진은 모두 달동네 골목이다. 골목엔 뭐가 있을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길의 바닥, 역시 시멘트로 마감된 담, 문 밖에 세워놓은 자전거와 의자가 있다. 담에는 낙서와 골목화가가 그린 벽화가 있고 대문엔 우유배달용 주머니가 달려있다. 이 모두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아파트에 비해 사람 사는 냄새가 훨씬 강력한 곳이 골목이다. 김재경의 골목사진엔 사람이 없다. 아니 제공된 사진 9장을 보다가 딱 한군데서 사람을 찾았다. 찍을려고 든게 아닌 모양이다. 정말 셔터를 누르는데 우연히 사람이 뛰어든 형국이다. 그 외의 사진에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인기척을 느낄 순 있다. 흑백의 골목이긴 하지만 쓸쓸하지 않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누가 서성거리다가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곧 누군가 나타나서 담배연기 한 자락 날릴 것 같기도 하고 재활용쓰레기를 든 아저씨가 주춤주춤 나올 것 같은 골목이다. 한남동 담벼락의 저 의자들은 당연히 전시용이 아니다. 여름날 골목을 스쳐가는 한줄기 저녁바람을 쐬기 위해 7명의 동네사람이 저 자리를 채울 것이다. 김재경의 골목은 그렇듯 모두 사진이 찍히기 전과 찍히고 난 다음의 변화에 대해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전시장에 가게 되면 보도자료에서 못 본 나머지 사진은 과연 어떤지 확인해보고 올 것이다.

 

금호2가동-100305(1-3.no14).jpg

  김재경 금호동 2가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10

 

명륜동-090923(2-5.jpg

김재경 명륜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외형적인 면에서도 파노라마 판형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모든 사진들은 어딘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거나 오르막이 있는데 그게 다중적이며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분명 파노라마의 형식 덕분이다. 긴 가로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세로의 선이 화면을 분할한다. 그 칸막이마다 각자의 거주 공간이 있거나 대문이나 창문이나 쪽문이나 계단이 있다. 막이 열리고 아직 주인공이 나오지 않은 상태의 연극 무대와 같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아주 많은 연극이다. 이제 곧 징이 울리면 저 무대의 칸막이 마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아주 시끌벅적한 골목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저 골목에 사람이 들어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진에선 사람이 느껴진다. 사진을 20년 넘게 보다 보니 눈에 없는 것도 보이긴 한다. 진짜!!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못 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니 그 분들을 위해 아쉽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보문3가동-090922(2-2.jpg

김재경 보문동 3가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옥수동-101125(1-3.jpg

김재경 옥수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10

 

 

이화동-091103(4-5.jpg

김재경 이화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중림동-091016(1-3.no17).jpg

김재경 중림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충신동-101109.14(1-1.no8).jpg

김재경 충신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10

 

 

한남동-090905(1-3.no18).jpg

김재경 한남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한남동-090905(3-3.no13).jpg

김재경 한남동 Gelatin Silver Print 17.5 x 48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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